“국민을 위한 국정을 운영하겠다. 하지만 갖지 못한 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이다.”
9일 실시된 스페인 총선에서 사회당이 재집권에 성공하자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총리가 승리를 자축하며 한 약속이다.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테러 여파로 집권한 뒤 4년 동안 노인과 여성, 동성애자 등 소수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 온 소신을 계속 지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인플레 등 경기 비상등이 켜지자 우파인 야당이 “10년 동안 일궈놓은 경제 성과를 4년 만에 까먹었다”며 공세를 취했지만, 유권자들은 인플레를 친시장적 경제정책보다는 더 좋은 노동조건과 임금인상, 복지정책 등 좌파적 방식으로 타개하기를 원했다.
같은 날 실시된 프랑스 지방선거와 헝가리 국민투표에서도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표출됐다. 올해 독일 헤센주와 함부르크주 등 주요 지방의회 선거에서 공산당 후신인 좌파당이 의회 진출선을 넘는 등 시장 친화적 경제정책을 내세우는 중도우파에 기울었던 유럽 민심이 다시 왼쪽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프랑스 지방선거 1차투표에서는 지난해 대선에서 패했던 사회당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대중운동연합(UMP)을 눌렀다. 출구조사 결과 사회당은 47.5%의 득표율을 얻어 40%의 득표율에 그친 UMP를 7.5%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파리 리옹 릴 스트라스부르 등 주요 도시에서도 좌파 후보가 우위를 보였다. 16일 실시하는 결선투표에서는 좌파의 승리가 더 확고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사르코지의 당선 직후 고조됐던 기대감이 집권 9개월 만에 무너진 것은 대통령의 지나친 사생활 노출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구매력 향상과 물가 안정에 정부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같은 날 헝가리에서는 의사 왕진비와 입원비, 대학 수업료의 10%를 수익자에게 부담토록 하는 우파적 개혁법안을 폐지할 것인지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에서 83~85%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해당 법안들이 폐기됐다. 이는 사회당이 유로존 가입 등을 위해 추진해 온 강도 높은 개혁정책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최근 수년간 옛 공산권 국가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자본주의적 개혁 피로증’ 과도 연관된 것으로 분석된다.
헝가리 사회당 연립정부는 2006년 재집권 이후 재정적자를 줄여 유로존에 가입하는 것을 목표로 세금 인상, 의료 및 교육 시스템 개선, 공공 부문 구조조정 등 강도 높은 긴축 개혁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작은 비율이나마 비용의 일부를 국민에게 지우려는 법안들이 여론에 의해 좌초됨으로써 좌파정부가 추진하던 친시장적 개혁조치는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됐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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