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탕정면의 ‘크리스탈 밸리’. 액정화면(리퀴드 크리스탈 디스플레이, LCD) 관련업체 126개가 모인 세계 최대 규모의 LCD 생산단지다. 요즘 이곳은 삼성전자와 소니의 10세대 LCD 투자 결렬로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다.
10세대 LCD에 대한 대규모 투자 부담을 떠안게 된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삼성코닝 등 관계사를 비롯해 120여 개 협력업체, 아산 일대 상권까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속을 태우고 있다. 하늘도 잔뜩 찌푸린 6일 둘러본 크리스탈 밸리의 시름은 생각보다 깊었다.
삼성전자와 소니, 8-2라인 투자협력도 불투명
삼성전자가 2015년까지 탕정 일대에 조성하는 LCD 단지는 둔포 협력단지 75만평, 천안 10만평 등 총 225만평 규모. 이 중 개발이 끝난 곳은 7세대 라인과 8-1라인 등 70만평 정도에 불과하다. 10, 11, 12세대 투자에 대비해 비워둔 나머지 지역은 아직도 허허벌판이다.
축구장 11개를 합친 크기의 7세대 라인 건너편에서는 내년 입주를 목표로 사원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장기 투자에 대비해 대규모로 짓고 있는데, 소니의 투자 포기로 아파트의 미래도 불안해졌다.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삼성코닝과는 LCD용 특수유리 이송을 위한 지하터널 공사까지 마쳤다. 10세대 LCD의 경우 종이처럼 얇은 0.7㎜ 두께에 길이 3m가 넘는 유리를 사용하므로 트럭으로 옮길 수 없어 지하터널에 컨베이어를 설치해 옮길 계획이다.
그러나 기반 공사를 한 보람도 없이 10세대는 물론이고 당장 8-2라인 투자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소니와 8-2라인 투자 협상은 타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아직까지 결정된 것이 전혀 없다. 삼성전자가 나머지 부지를 개발하려면 현재까지 들어간 10조원 외에 약 20조원을 더 투자해야 한다. 지금까지 소니와 공동투자로 ‘S-LCD’를 설립해 생산량을 절반씩 나눴으나, 앞으로는 삼성전자가 단독 투자하거나 새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또 생산량을 소화할 판매처도 새로 뚫어야 하기 때문에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암담한 협력업체와 지역 경제
삼성전자만 바라보고 달려온 협력업체들은 앞이 더 캄캄하다. 삼성전자의 투자 지연으로 1차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2, 3차 업체들까지 벼랑끝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삼성전자 탕정 LCD 공장 인근에서 LCD 패널 이송 로봇을 만드는 에스에프에이. 2006년 약 3,800억원의 매출, 700억원의 경상이익을 올린 우량기업이다. 신은선 사장은 요즘 8세대 설비를 만드느라 정신없이 바쁘지만, 내년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는 “시설업체 특성상 양산 1년 전에는 공장을 짓고 관련 설비를 개발해야 한다”며 “삼성전자의 투자가 늦어질수록 협력업체들은 일손을 놓고 놀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이 업체는 100개 이상의 2차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신 사장은 “1차 협력업체들의 매출 및 고용 감소는 2, 3차 협력업체의 부도로 이어지고 결국 지역경제까지 흔들릴 수 있다”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속이 탄다”고 말했다.
충남도청도 주변 상권 등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전태석 디스플레이산업 담당관은 “LCD는 도 전체 수출액의 4분의 1을 점할 정도로 중요한 품목”이라며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채 훈 부지사를 단장으로 한 대책반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제 지원 및 인ㆍ허가 단축 등을 검토하고 필요한 내용은 중앙정부에 건의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며 “LCD 관련업체들을 중심으로 디스플레이 협의체를 만들어 자구책을 모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아산=류효진 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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