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어빈 지음ㆍ윤희기 옮김까치 발행ㆍ367쪽ㆍ1만5,000원
시인 엘리어트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을 때, 그는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욕망의 저돌성을 상기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이 책 서문의 도입부를 흉내내 보자.
“당신은 지금 욕망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기사를 읽고 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우리 행동의 기저에는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 움직인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철학 교수 윌리엄 어빈은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불청객, 욕망의 성장 과정을 추적한다. 욕망이 우리의 일상과 인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기존의 철학ㆍ종교는 물론, 진화심리학과 신경과학 등 최근 30년 사이 널리 각광 받고 있는 이론들의 도움을 빌어 규명해 보인다.
책은 인간이 욕망의 종속 변수라고 말한다. 욕망의 흐름을 멈추게 한다는 명상 상태도 엄밀히 말하자면 “명상의 상태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의 지속 상황”이라고 책은 말한다.
욕망의 관점에서 볼 때, 시기(envy)와 질투(jealousy)는 분명 다르다. 시기는 지금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할 때의, 질투는 갖고 있는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 할 때의 감정이다.
욕망은 멀쩡한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이다. 초대형SUV 등 실생활과 무관한 소비재 상품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이 매년 100만 명을 웃도는 것이 소비재 상품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욕망 때문이다. 반면 욕망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상태는 ‘권태’를, 욕망의 위기는 ‘새로운 깨달음’을 의미한다.
이제 문제는 생물학적 보상 시스템(BIS)에만 충실한 골칫거리, 욕망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독신 등 종교가 제시하는 욕망 억제의 방법들,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 등 철학적 금욕주의를 두루 살펴본 책은 “당신의 삶이 천국의 것인지 지옥의 것인지는 당신이 당신의 욕망을 어느 정도로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공을 독자들에게 넘긴다.
책은 도입부에 경구 한 줄을 제시한다. “현자를 행복하게 하는 데는 필요한 것이 거의 없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시킬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적 격변에 시달렸던 17세기 프랑스 작가 라로슈코프가 남긴 잠언이다. 책은 도처에 명구나 일화를 배치, 욕망이란 키워드로 정리한 역사ㆍ문학ㆍ문화 탐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만족해 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노자의 말씀을 빌어, 책이 들려 주는 결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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