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웃음이었지만 첫 만남은 화기애애해 보였다. 강만수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7일 경제정책과 중앙은행의 ‘수장’으로 처음 만났다. 강 장관이 바로 며칠 전 중앙은행의 심기를 건드린 터라 “단순한 상견례 차원의 만남”이라는 설명이 곧이 들리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시종 말을 아낀 채, 웃기만 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고집세기로’ 유명한 둘의 관계는 일단 ‘어색한 밀월’로 출발하는 분위기다.
강만수 "한은 자주성 존중 " 이성태 "정부와 협조 지속"
이날 상견례는 기획재정부측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며칠 전부터 기획재정부 측이 한은에 회동을 요청했으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전에 만나는 것이 통화정책에 대한 ‘간섭’으로 비칠 수 있어 이날 금통위 직후에 만났다는 후문이다.
강 장관이 한은에 대해 ‘비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 이를 입증하듯 그는 장관은 인수위에서, 그리고 취임 하자마자 여러 차례 한은을 자극했다. 이번주 초 기자간담회에선 “G5, G10 국가 중 어떤 중앙은행 모델을 골라도 지금 한국은행의 권위보다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미국 같은 나라들은 환율정책을 재무부에서 직접 행사한다”는 발언으로 한은의 통화ㆍ환율정책 수행에 못마땅함을 표시했다. 비례해서 한은 내부의 긴장과 불만도 고조되고 있는 상태다.
이날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오찬을 함께 했다. 두 사람 모두 “오늘은 상견례 자리였고 자세한 정책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또 “우리가 만나는 자체가 이렇게 큰 뉴스인가. 앞으로는 만남 자체가 뉴스가 안되도록 해야겠다”(강 장관) “한은 총재는 정치인이 아니다. 드릴 말씀이 없다”(이 총재) 등 말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임종룡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이날 회동결과에 대해 “한국은행이 통화신용정책을 중립적으로 수립해 나갈 수 있도록 자주성을 최대한 존중해 나간다” “통화신용정책이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루도록 정부와 정책적 협조를 지속한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필요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정책과제다” 등에 인식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일단 얼굴을 마주한 이상, 최근 불거졌던 두 기관의 불협화음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됐다. 기획재정부 실무진들도 강 장관에게 “당분간 한국은행 문제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낫다”고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밀월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냥 어깨동무하고 가기엔 부딪힐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물가와 경기, 두마리 토끼몰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정책을 둘러싼 갈등가능성은 이미 싹트고 있다. 환율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비타협적 성격’이 그렇다. 강 장관이나 이 총재 모두 고집과 소신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 강 장관은 예전부터 한은독립 문제에 가장 냉소적이었던 인물이고, 이 총재는 과거 한은법 파동 때마다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한은 관계자는 “경제환경도, 경제외적 환경도 모두 여러모로 힘든 시기가 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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