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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문학적인 인간으로 만든 첫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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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문학적인 인간으로 만든 첫번째 책

입력
2008.03.0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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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에게 무엇일까?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어색하다. 오래된 내면의 친구를 불러내는 듯하다. 한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친구를 말이다.

그러나 무엇에든 처음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첫 책이 있다. 이원수의 짤막한 단편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치 않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 작품은 죽어가는 어머니와 어린 딸에 관한 이야기였다.

병이 깊은 어머니에게 어린 딸은 인형을 만들어달라고 조른다. 또래 아이들과 같이 놀기 위해서다. 또래 아이들이 인형이 없다고 놀이에 끼워주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의 청에 못 이겨 아이가 잠든 밤에 마지막 힘을 다 짜내 인형을 만든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눕는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머리맡에 놓인 인형을 발견하고 너무 기뻐 인형을 들고 마당으로 뛰쳐나간다. 그러고는 혼자 인형과 소꿉장난을 한다. 아이가 인형에게 소리친다. 무엇을 하라고 했는데 인형이 축 늘어져 있자 화가 난 것이다.

“어서 일어나. 놀잔 말이야.” 아마도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마치 병든 제 어미에게 하듯. 어머니는 방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며 홀로 죽어가고,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마당에서 인형에게 악을 쓴다. “일어나! 일어나서 나처럼 뛰란 말이야.”

이 작품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슬픔의 예리한 칼날을 느낀다. 아무도 찌르지 않지만,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엄정한 현실처럼, 그것을 요구하는 칼날처럼 내 앞에 ‘있다’.

뼈속까지 파고드는 체험이었다. 나는 죽어가는 엄마인가, 아니면 아이인가, 아니면 인형인가? 나는 전생에 작품 속 엄마처럼 그렇게 죽어갔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 인형에게 악을 쓰는 아이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첫 번째 것은 그것으로 마지막일지 모른다. 이후에 만나는 것들은 모두 그 ‘첫’을 복사하거나 반복하거나 흉내내는 것일지도. 그것을 그리워하고 그래서 기억해내려고 힘쓰는 것이 문학일지도 모른다.

이 첫 책은 이후의 나를 문학적인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덕분에 나는 내가 맛보는 모든 삶의 경험을 문학적인 체험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무엇을 깨닫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그 이후 나는 문학적으로 전혀 자라지 않았다. 다 자라버렸기 때문이다.

채인선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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