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국민들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최대 득표율을 얻도록 표를 몰아준 것은 지금보다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기대는 서민들이 더했다. 16대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이들 중 40%가 이명박 쪽으로 지지를 옮겼다. 그들은 이 후보의 재산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데도 사시 한번 보내지 않고, BBK의혹이 눈덩이처럼 불거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에 대한 열망은 이 후보에게 거의 맹신에 가까운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새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벌써부터 꿈이 어그러지는 게 아닌가 하는 실망감이 엄습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난데없이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을 들고 나온 것부터가 그랬다. 서민들을 부자로 만드는 도깨비방망이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이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눈치 빠른 이들은 너도나도 학원으로 줄달음쳐 사교육시장만 배불리는 꼴이 됐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교육개혁도 입시와 연계되면 사교육으로 치닫는 우리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 탓이다. 돈을 벌게 해주기는커녕 서민들 주머니를 쥐어짜게 하고 있으니 저절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내각 인사파동을 지켜보는 서민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멍이 들 지경이다. 애당초 평균재산이 40억원에 이르는 상위 1%의 성공한 사람들을 장관에 앉힌 것 자체가 잘못 꿴 단추다. 그것은 검증시스템의 부재라기보다는 철학과 정체성 부재의 소산이다. “능력과 경륜만 있으면 되지 재산이 무슨 상관이냐”는 말에서 서민들과 동떨어진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이 그토록 내세운 실용이라는 게 결국 이런 거였나 싶었다. 서민들의 아픔을 모르면서 어떻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건지 국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덕성보다 능력을 높이 산 것은 대통령 한 명으로 족했다. 부자내각이 서민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민심은 쉽게 표변한다. 성군이라고 칭송했다가도 어느날 등을 돌리고 패대기치는 게 여론이다. 이번 주 초 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들이 취임 직후 지지율이 70~80%대였던 것에 비춰보면 민심의 이반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미국 공화당의 레이건 정부는 1980년 집권 직후 ‘레이거노믹스’를 내세워 불황을 극복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공화당이 미국 경제를 살려냈다며 열광했고 88년 대선에서 부시가 승리하는 등 공화당의 집권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금융불안과 쿠웨이트 전쟁에 따른 석유가격 급등의 여파로 경기는 빠르게 하강했고 공화당에 대한 지지율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층인 서민들이 등을 돌린 것은 참여정부가 경제를 비롯해 어떤 분야에서도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배신감이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이명박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율로 나타났고 이제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이뤄내지 못한 걸 대신 갚아야 할 운명이다. 이 대통령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 서민들은 지갑이 두둑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번득 날을 세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충재 부국장 겸 문화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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