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개혁 정체성이다. 파란을 몰고 온 부정 비리 연루자 배제 논란에 이어 정체성 문제가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열린우리당 실패의 교훈인 정책 노선을 둘러싼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공천심사위원회가 정체성과 관련한 제2의 쇄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총선기획단 핵심 관계자는 6일 “비리 부정 문제가 일단 정리된 만큼 당 정체성과 노선에 맞지 않는 인사의 공천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며 “당 정체성을 무시하거나 정책 혼선을 초래한 인사를 공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공심위 외부위원 사이에 형성됐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미 대선 참패를 수습하기 위한 쇄신안, 당규 14조 3호의 공천심사 방향에서 ‘당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정책적 혼선을 초래한 인사에 대해 책임을 규명한다’고 규정했다. 또 ‘당의 정강, 정책, 당론, 당명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위 등의 전력이 있는 경우’(당규 12조) 후보 신청 자격을 주지 않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보수 노선에 맞서는 대안 야당이 되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당의 개혁지향 정체성을 선명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재승 공심위원장도 4일 “당의 정체성은 평화, 민주, 개혁이다. 그것을 수호해야 한다. 그래서 당의 정체성에 반하는 인사를 공천에서 제외하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정책성을 주요 공천 기준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공심위가 5일 비리 부정 전력자에게 공천 쇄신 칼날을 휘두르면서 한바탕 판을 뒤흔들 여건은 마련된 상태다. 강운태 전 내무장관, 김선미 의원, 김영환 전 의원의 복당 신청을 “탈당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며 거부하는 등 강경한 분위기다.
당 안팎에서는 구체적인 대상자까지 거론된다. 격론 끝에 이라크 파병 연장 반대 입장을 정했지만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가운데 16명이나 찬성표를 던진 지난해 말 표결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또 17대 국회 초반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 당시 국보법 유지를 주장했던 의원과 종합부동산세,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 등의 사안에서 반(反)서민 정책을 지지했던 보수 색채 짙은 의원들도 검토 대상이다. 이밖에 이념과 노선이 민주당과 정반대인 자유선진당 입당을 저울질했던 일부 충청권 의원들도 정체성을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정체성 심사 기준이 추상적이고, 우리당 시절 당론 자체가 반개혁적인 경우도 많았던 만큼 일률적인 적용은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나아가 당선 가능성이 있는 현역 의원을 배려해야 하니 눈감아 주자는 현실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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