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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 감독 "박제화된 80년대의 이미지 부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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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 감독 "박제화된 80년대의 이미지 부수고 싶었어요"

입력
2008.03.0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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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불완전한 체험이다. 기억은 언제나 왜곡된 모습으로 남는다. ‘과거’라 부르는 시공간은 그 불완전 위에 쌓인 성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그 기억과 과거를 동일시한다.

6일 개봉한 <과거는 낯선 나라다> 는 그런 타성을 부순다.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두 청춘이 몸을 불살랐던 1986년 4월 28일이라는 과거로, 이 영화는 끙끙대며 다가선다. 그 즈음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재잘대는 홍대 앞 카페에서, 작품을 연출한 김응수 감독을 만났다.

“80년대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 추상화돼 있는 것 같아요. 장중한 음악이 깔리고, 자료화면이 삽입되고, 미국의 행동이 어땠고, 우리의 정당성은 무엇이었고… 그런 것들만 늘어 놓잖아요. 그렇게 미화되고 고착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진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영화는 전두환 정권 말엽, 대학로의 서울대병원을 점거하려다 실패했던 서울대생들의 인터뷰로 이뤄졌다. 인터뷰이(interviewee)들은 공통된 기억을 가졌다. 점거 실패 며칠 뒤 친구, 선배, 혹 이름과 얼굴 정도 알고 지내던 김세진과 이재호라는 두 학우가 분신한 것이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이들의 기억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들의 기억 속으로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간다.

인터뷰어(interviewer)인 김 감독의 질문은 이런 식이다. “그 때 몇 번 버스를 타고 명륜동으로 갔었나요”, “화염병은 박스에 담았습니까, 아니면 가방에 넣었습니까”, “어릴 때 김칫국물이 가방에 흘러 부끄러웠던 기억은 없습니까” “누구의 방에서 몇 시에 현장으로 출발했습니까”. 피의자를 취조하는 검사 같은 감독의 질문에, 인터뷰이들은 어지럼증을 느끼다 끝내 짠 눈물을 쏟는다. 인터뷰이 속에는 서울대 85학번인 김 감독 자신도 포함된다.

“정당성을 주장하는 다큐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건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죠. 이런 방식은 여전히 누군가의 도구가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상대를 비판하거나, 자기의 가치를 내세우는 도구. 그러나 나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그 시절을 성찰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객관적인 팩트(fact)만 요구한 거죠. 여러 사람의 구체적인 팩트가 맞물리면, 그 시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 감독은 러시아로 유학간 운동권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1997년)로 데뷔했다. 90년대가 배경인 이 영화 속에서, 서른이 된 운동권들은 80년대의 무거운 시공간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영화들은 장르 영화(욕망, 달려라 장미)이거나, 영화적 문법 파괴를 시도하는 작품(천상고원)이었다. 정치적인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을 향하는 듯했던 감독의 시선이, 이번 영화로 다시 80년대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진실과 맞부딪치기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정치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범주에 포함되는 것을 두려워하죠. 그런 강박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이 이야기는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고, 마침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의 요청이 있어 작업이 가능했어요. … 난 내가 분절적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거쳐 온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가 살았던 시간들이 모두 함축돼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가, 그 시간들을 성찰케 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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