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획재정부 고위 인사는 독일 하원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물가에 연동해 과표와 세율 등이 자동 변경되는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아직 도입하지 않고 있다고 하자, 돌아온 답변은 뜻밖에도 “참 잘했다”였다.
독일에서는 물가가 올라 명목소득이 증가할 경우 소득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도를 도입했지만, 기업들이 이를 감안해 임금 상승폭을 줄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소득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당초 취지와 달리 국민들에게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감세(減稅) 사랑이 뜨겁다. 유류세 인하를 신호탄으로 1가구 1주택자 양도소득세 인하, 연결납세제도 도입, 법인세 인하 등 연일 세금줄여주기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심엔 대표적 감세론자인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있다. 취임 첫머리부터 “조세 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시점이 됐다”며 송두리째 손을 볼 태세다.
얘기를 듣고 있자면 지금까지 우리 경제가 어려웠던 것은 모두 높은 세율 때문이고, 감세만 한다면 금방이라도 경제가 활성화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나라당까지 나서서 물가연동 소득공제를 시행하겠다고 한 술 보태고 있다.
내리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어려운 게 세금이다. 세금은 기본적으로 약탈행정이기 때문이다.당장 새 정부 임기 5년의 세수 감소는 예산 지출을 줄여서 메운다 치더라도,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중장기적 재정 기반이 흔들린다면 손 쓸 대책이 없다. 혜택은 고스란히 대기업과 부자들에게만 돌아가고,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경기 부양 효과는 미미할 수도 있다.
새 정부의 ‘감세 만능주의’는 선진국 따라 하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물가연동제에서 보듯, 선진국들의 감세가 반드시 긍정적 효과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감세 정책은 좀 더 냉철하고 신중해져야 한다.
경제산업부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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