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이산> 에서 정조(이서진)의 곁을 줄곧 지키는 인물이 있다. 탤런트 한인수씨가 연기하는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ㆍ1720~1799)이다. 이미 영조 시절 도승지에 올랐고 이후 대사헌, 예문관 홍문관의 제학 등 언론과 학문분야의 관직과 경기감사, 비변사 당상 등 지방ㆍ중앙 행정직을 두루 거쳤다. 노론의 득세 속에서도 남인인 그는 소신을 지켰다. 영조의 사도세자 폐위를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했다. 그런 그를 영조는 좋아했다. “번암은 진실로 사심 없는 신하”라고 했다. 이산>
▦채제공이 우빈객(右賓客)이 된 것은 정조가 스무살이던 1772년. 즉위 4년 전이었다. 우빈객이란 ‘세자에게 글을 가르치는 관직’이다. 그러나 사도세자 폐위에 반대한 번암은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에게는 ‘스승’ 이상이었다. 노론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고, 세상을 개혁하려는 생각을 가진 초로(46세)의 그를 정조는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따랐다. 정조 즉위 후 번암은 형조판서에 올라 노론 벽파와 사회개혁을 밀고 나갔고, 화성 축조 감독를 맡아 영의정에까지 올랐지만 청렴을 잃지 않았다. 정조에게 야심 많은 젊은 개혁가 홍국영이 ‘심복(心服)’이었다면, 그는 ‘멘토’였다.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나 조언자라는 의미의 멘토(Mentor)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 트로이전쟁에 참가하는 오디세우스로부터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과 집안일을 부탁 받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멘토르가 힘과 지혜로 때론 친구처럼, 때론 스승처럼, 때론 카운셀러로, 때론 아버지처럼 텔레마코스를 돌봐 주었기 때문이다. 멘토는 인텔 등 미국기업은 물론 우리 기업의 인재 육성에 활용되기도 한다. 동부제강의 빅 브라더, 동부화재의 후견인, 한국디엔에스의 도우미 멘터 제도가 그것이다.
▦최시중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을 놓고 시끄럽다. 그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란 이유에서다. 형(이상득 국회부의장)의 대학동기이자 친구인 그는 오래 전부터 이 대통령의 조언자였다. 그래서 야당과 일부 언론단체는 연일 “중립성과 독립성이 생명인 방통위원장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그는 언론인, 여론조사인으로 살아온 인생의 원칙까지 언급하면서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진정한 ‘멘토’ 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멘토가 멘티(멘토의 상대)의 눈치나 보며 공정함과 양심을 버리면 초라한 심복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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