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을 잃어 16년간 어떤 맛도 느끼지 못했다는 설태 김병만 선생. 그러나 태국 고추를 한 움큼 집어삼키자 눈물이 핑 돈다. 사회자가 맵지 않냐고 묻자 “전~혀 맵지 않습니다.
그냥 어머니 생각이 나서…”. 레몬, 양파, 청양고추, 고추냉이 등 보기만 해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데 골고루 한 입씩 베어 문 김병만은 “맛을 모르겠어요. 그저 씹는 느낌만 있습니다”라며 시치미를 잡아떼고, 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배꼽을 잡는다.
‘달인’ 코너만 4개월째. 방귀의 달인 보옹 김병만 선생, 16년간 말을 하지 않았던 음소거 김병만 선생, 추위를 못 느끼고 살아온 오한 김병만 선생 등 엉터리 달인을 통해 KBS <개그콘서트> 의 간판스타로 우뚝 선 달인팀 김병만(33), 류담(29), 노우진(28)을 여의도의 아이디어 회의실에서 만나봤다. 개그콘서트>
류담(이하 류): 어제 친구들을 만났는데 요즘 들어 달인이 좀 억지스럽데. 이대로 코너 끝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들을 많이 하더라고. 리얼리티를 살려야 돼.
김병만(이하 김): 설태 김병만에서는 시고 매운 음식을 먹고 참기만 하면 (방청객들이) 자연스럽게 웃었잖아. 그런 공감대가 있어야지. 너무 사기꾼 같고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변질돼 가는 것 같다. 초심으로 돌아가야지.
노우진(이하 노): 형, 매달리기의 달인 어때? 낙상 김병만, 절봉 김병만. 대롱, 미끈도 괜찮겠다.
류: 그것 좋네. 한 번 해보자. 예. 오늘은 16년간 철봉에 매달려 살아오신 대롱 김병만 선생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 (의자 등받이를 철봉 삼아 올라간다) 저는 16년간 철봉에서 생활해왔어요. 단 한 번도 땅에 내려가지 않았죠. 그래서 제 발바닥은 혓바닥보다 예민합니다. 가끔 신날 때는 춤도 추죠. (발등으로 거꾸로 매달려 손을 흔들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짤랑짤랑 짤랑짤랑 으쓱으쓱.
류: 예. 과연 대단합니다. 그러면 가려우실 때는 어떻게 하시죠?
김: 사타구니가 가려울 때는, (가랑이 사이에 의자 등받이를 끼고 앞뒤로 왔다 갔다 반복하며) 이렇게 긁죠. 소변 볼 때는 뭐, (두 손으로 매달려 한쪽 발을 들고) 강아지하고 비슷합니다.
류: 그러면 식사도 매달린 채로 하십니까?
김: 당연하죠. 저는 의자에 앉아서는 식사를 못합니다. 체하거든요.
류: 그래서, 뜨거운 짬뽕을 준비했습니다.
김: (시작한 지 10여 분. 얼굴은 땀으로 흥건하고, 팔은 후들후들 떨린다)
류: 땀이 많이 나시는데 괜찮으십니까?
김: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여기가 좀 습기가 많아서 그렇죠. (짬뽕을 받아들 생각도 하지 않고, 팔로 매달렸다가 다리로 매달렸다가 안절부절 한다)
류: 그래도 힘드신 것 같은데.
김: 제가 같은 자세로 오래 있질 못합니다. 지루하잖아요. 제가 성격이 급해서. 끙. (짬뽕을 받자마자 땅에 떨어진다. 황급히 일어나서는 으레 무뚝뚝한 얼굴로) 절~대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단무지는 먹어야 되니까….
류: (대본으로 머리를 때리며) 나가. (김병만 황급히 도망간 뒤 노우진을 바라보며) 너 수제자 맞지? 한 번 매달려 봐.
노: (흠칫 놀라며)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류: NG야 NG. 그러니까 재미가 없는 거야.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제자가 왜 매달리기를 배우러 들어와? 리얼리티가 없잖아.
노: 그러면…. 저, 사실은 어제 들어왔습니다. 어때?
김: 좀 낫네. 그래도 아직 약하다. 처음부터 다시 해볼까.
한 코너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온다. 김병만은 지친 듯 의자 등받이에 제대로 올라 앉지도 못하고, 류담과 노우진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참 허공을 바라보던 김병만의 한 마디에 멤버들이 쓰러진다. “이거 별로야. 우리 다른 것 할까?”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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