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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악역(惡役)' 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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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악역(惡役)' 수석비서관

입력
2008.03.0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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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가 인정하는 최고급 두뇌집단이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미국에서 케네디 행정부의 피그만 침공 사건, 존슨 행정부의 베트남 정책, 닉슨 행정부의 워터게이트 사건 등을 겪고 나서 학자들이 던진 질문이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 미국 예일대학의 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가 1982년에 제시한 개념이 바로 ‘집단사고(groupthink)’다.

이명박 정부도 ‘집단사고’ 위험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성원들이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을 의미한다. 응집력이 강하다는 건 공동 목표에 대한 일치도가 높다는 걸 뜻한다. 서로 눈빛만 봐도 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원리가 작동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목표를 수행하는 데에 직선으로 나아가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쉽다. 다른 대안에 대한 검토와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미 내려진 결정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해진다. 결말은 파국이다.

속된 말로 배짱이 맞는 사람들만으로 권력 핵심부를 구성하면 일사불란한 업무 추진이 가능해 좋을 것 같지만, 그게 바로 독약이다. 집단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에선 집단사고가 일어날 수 없다. 눈빛만으론 소통이 어려워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긴 논의과정과 꼼꼼한 검토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출범 시 가장 우려됐던 게 바로 노무현의 ‘386 인맥’이 장악한 청와대의 집단사고였다. 여러 논객들이 경고를 보냈지만, 노무현은 듣지 않았다. 심지어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고언을 할 때에도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386 참모들과 단신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해왔던 방식으로 일하게 내버려둬 달라”며 내치곤 했다. 그 중대한 국정운영을 자신과 동지들의 ‘코리언 드림’ 수준으로 격하시킨 건 아니었을까?

2006년 10월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쩌면 그들이 그렇게 민심을 모르고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우기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두른다”고 말한 바 있다. 손 교수가 노 정권이 “집단사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실감하게 해 주는 좋은 예”라고 한 게 불행하게도 현실로 맞아 떨어지고 말았다.

노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권도 집단사고를 범할 가능성이 높은 정권이다. 강한 소신 또는 독선에 관한 한 노무현과 이명박은 난형난제(難兄難弟)인 데다, 두 사람 모두 배짱 맞는 걸 좋아하며, 이게 인사에 그대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그렇다. 엉망이 된 최근의 장관 인사도 이 정권이 이미 집단사고의 포로가 되었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다.

이 정권이 속는 셈 치고 재니스의 ‘집단사고 피하기’ 방법을 시도해 보면 좋겠다. 아니 국익을 위해 제발 그렇게 하라고 간곡히 호소하고 싶다. 재니스는 여러 방법을 제안했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방법은 ‘악역(惡役) 두기’다. 무슨 결정에서건 아예 반대를 전담하는 사람을 두라는 것이다.

가칭 ‘악역’ 수석비서관을 두면 어떻겠는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소신 강한 대통령 앞에서 다른 의견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자꾸 그렇게 하면 대통령의 눈밖에 나 쫓겨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 전담 수석비서관제 어떨까

아무리 옳은 비판을 해도 정적(政敵)이나 언론이 하면 듣지 않는 게 권력자의 심리다. 저의만 캐려고 든다. 그러나 ‘악역’ 수석비서관이 하면 선의를 믿기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위도 수석비서관 정도는 돼야 힘이 실리며, 또 비판을 위한 사전조사를 위해선 적잖은 인력이 필요하다. 어떤 나라에도 그런 제도는 없다고 코웃음칠 게 아니라, 한국처럼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심한 나라도 드물다는 점에 주목해보는 게 어떨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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