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戰雲)이 짙게 깔렸다. 강만수 장관을 수장으로 맞은 기획재정부가 여차하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공격할 태세다. “한국은행도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강 장관의 철학은 10년의 공백에도 변함이 없다. 이제 확실한 칼자루를 쥔 만큼, 전쟁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금융통화위원 인선, 금리 인하 시기 논쟁, 세계적인 달러 약세 등 줄줄이 대기 중인 현안 앞에 개전(開戰)은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
강만수의 ‘한국은행론’
강 장관과 한국은행의 ‘악연’은 2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초반 재무부 이재국장 시절 통화정책을 둘러싸고 팽팽히 맞섰고, 97년 재정경제원 차관 시절엔 한국은행법 개정을 놓고 격돌했다. 장관이 되서 다시 맞닥뜨린 한국은행과의 대립은 따지자면 ‘3라운드’인 셈이다.
강 장관이 그때부터 줄곧 견지해온 철학은 “한국은행도 정부 조직의 하나인 만큼,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화정책은 중앙은행 고유 영역이 아니라 정부와의 의사 소통이 선행돼야 하며, 외환ㆍ환율도 정책 균형을 위해서는 중앙은행에 맡길 수 없고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책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가 ‘독립 속의 협력 공존’을 추구한다면 한국은행은 ‘고립 속의 유아독존’을 추구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고까지 했다.
폭풍전야 한국은행
강 장관의 잇단 ‘원-투 펀치’에 한국은행은 초긴장 상태다. 당장 대립구도로 가 봐야 득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 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일전을 치러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한국은행 측은 강 장관의 인식이 ‘구시대적’이라고 몰아 세운다. “한국은행의 권한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하다거나 고정환율제가 바람직할 수 있다는 등의 발언은 세상이 변한 걸 모르고 하는 얘기”(한은 국장)라는 것이다.
한은 입장에선 최중경 차관도 부담스러운 존재다. 북핵 사태 등으로 환율이 급락하던 2003년,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이던 그는 한은에 대규모 발권력 동원을 요구하며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장ㆍ차관이 모두 한은을 통제 대상으로 보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가 된다”고 했다.
첫 전투는 금융통화위원 인선
강 장관과 한국은행의 첫 전투는 통화정책 독립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의 후임 위원 인선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7명의 금통위원 중 강문수(기획재정부 장관 추천), 이덕훈(한국은행 총재 추천), 이성남(금융위원장 추천) 3명의 임기가 4월 하순 만료되기 때문이다.
금통위원은 해당 기관장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3명 모두 강 장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지금까지도 해당 기관장의 추천은 큰 의미가 없었다. 만약 친 정부 측 인사 3명이 금통위에 입성한다면, 금통위 내부 힘의 균형은 정부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4명의 금통위원 중 한은 우호 세력은 총재ㆍ부총재와 한은 출신인 심 훈 위원 3명에 불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표결로 의사 결정을 하는 금통위에 친 정부 인사가 많아진다면, 금리정책에 대한 강 장관의 입김이 훨씬 강해질 수밖에 없다. 당장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시기를 두고 일대 격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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