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체> 연재 중 지방 중학교로 강연하러 갔어요. 어린 학생들이 나를 알까 싶어 ‘너희 엄마한테 가서 내가 누군지 물어봐라’고 했더니 걔들이 <촐라체> 얘기를 꺼내는 겁니다. 덕분에 서로 얘기를 주거니받거니 활기찬 자리가 됐죠. 폭넓은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 느꼈습니다.” 촐라체> 촐라체>
소설가 박범신(62ㆍ사진)씨가 작년 8월부터 5개월간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 연재한 소설 <촐라체> 를 책으로 펴냈다(푸른숲 발행). 출간에 맞춰 4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박씨는 “1979년 연재한 <풀잎처럼 눕다> 를 필두로 80년대 발표작 대부분을 신문에 연재했고, 이번 소설도 애초 신문 연재를 생각했었다”면서 “인터넷 연재 제의가 들어오자 주변 사람 여럿은 ‘악플’을 우려해 말렸지만 내가 쓰고자 하는 방향이 확고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풀잎처럼> 촐라체>
소설은 평소대로 200자 원고지에 사인펜으로 썼고(블로그에 옮겨적는 일은 지인이 도왔다), 블로그에 집필 중 단상을 적거나 댓글을 달 땐 직접 자판을 두드렸다. 박씨는 “하루 방문객 1, 2만 명이 수시로 남기는 반응을 접하니까 예전에 작품 쓸 땐 실감하지 못했던 독자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며 “작가라면 매체를 가리지 않고 독자를 찾아가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뜬금없이 ‘전라도 좌파 꼴통’(박씨는 충남 논산 출생)이라 욕하거나 ‘촐라체가 무슨 글씨체냐’고 물었던 댓글에 웃었다는 박씨는 “작품에 대한 격조 있는 토론을 은근히 기대했는데 일방적 찬사나 인민재판식 비난이 공존하는 수준인 것 같다”며 인터넷 댓글 문화를 꼬집었다.
<촐라체> 는 히말라야에서도 ‘난공불락의 빙벽’으로 이름난 촐라체(6,440m) 북벽을 오르는 이복형제의 사투를 그렸다. 2005년 이곳 정상에 오른 후 조난 당했다가 극적으로 생환한 산악인 박정헌, 최강식씨의 실화가 모티프가 됐다. 촐라체>
소설은 애증 관계인 두 형제, 베이스캠프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나’가 1인칭 화자로 번갈아 나서며 촐라체 등반 일주일을 증언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가파른 빙벽에서 몸짓 하나하나에 제 명줄을 건 이들의 극적인 사투와 생에 대한 명징한 초월의식이 유려한 문장에 담겨 작가의 관록을 증명한다.
“이 소설은 산악소설이라기보단 존재와 시간, 꿈과 불멸에 관한 이야기”라는 박씨는 “생의 방향이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자본주의적 안락에 젖어 사는 젊은 세대에게 일침을 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촐라체 조난으로 손발가락 대부분을 잃고도 산악 행글라이딩에 매진하는 박정헌씨의 근황을 전하며 작가는 “세상은 야성을 잃지 않은 ‘미친놈’들이 바꿔가는 것”이라며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일련의 차기작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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