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단] 열매

- 박주택

바람과 바람이 만난 격한 태풍

나무를 쓰러뜨린다

바람 불고 비가 와

세상의 문 하나씩 불빛 속에 닫히고

마음 속 깊은 깃발은 밤의 자리에 젖어 있다

파르르 근육을 떨며 보도블럭 위에 쓰러져 있는 나무

그 가지에 매달려 있는 열매들

젖줄을 빨아들여 둥글게 몸을 부풀리며

생의 마지막을 저민다

비에 젖은 사람

빛으로 자신을 여물게 하듯

아침의 자리에 쓰러져 있는 나무

자신의 몫으로 오는 시간을 헤집어

열매의 씨앗을 햇살에 퍼뜨려 놓는다

▦1959년 충남 서산 출생 ▦경희대 국문과 교수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꿈의 이동건축>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등 ▦현대시 작품상, 소월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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