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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89돌 3·1절/ 일제 '제암리 학살' 황당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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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89돌 3·1절/ 일제 '제암리 학살' 황당한 무죄

입력
2008.03.0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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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자행한 당시 일본 육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에 대한 일본군법회의 판결문이 발견됐다.

판결문은 앞서 일어난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이 조직적 명령체계를 통해 조선양민 29명을 무참하게 살륙한 ‘제암리 학살사건을 아리타 중위의 단독 행위로 규정하고, 그 학살행위에 범행의도가 없었다는 강변을 통해 무죄를 선고하기까지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판결문은 비밀문서로 분류돼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전 문화공보부 장관 이원홍(李元洪)씨가 최근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견, 본보에 공개했다. 학계에서는 일본 정부ㆍ군부 차원의 조직적인 책임은폐 기도 등을 포함, 제암리 학살사건의 진상 규명에서 빠진 고리를 채워넣을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하고 있다.

총 13장에 달하는 판결문은 서두의 주문(主文)에 제암리 학살로 ‘살인 및 방화 혐의로 기소된 육군 보병 제79연대 중위 아리타 도시오를 무죄로 한다’고 명기하고, 말미에는 ‘大正 8년(1919년) 8월21일 조선군 용산(龍山) 육군군법회의’라고 적었다.

그러나 군법회의 재판부는 스스로 판결의 문제를 인식한 듯 이례적으로 판사들 이름을 적시하지 않고 ‘판사장(判事長) 이하 관씨명(官氏名) 생략’이라고 기록함으로써 신원노출을 피했다.

판결문은 이어 ‘판결이유’에서 4월12일 아리타 중위가 경기 수원군(현재 화성군) 일대의 폭동(3.1운동) 진압명령을 조선군사령관(당시 우쓰노미야 다로ㆍ 宇都宮太郞 대장)과 보병 40여단장으로부터 받고 제암리 고주리의 예수교와 천도교 신도를 토벌해 그 근거를 없애기로 결정했다”고 주민학살의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리타 중위는 이틀 뒤 오후 3시께 부하 하사관ㆍ사병 11명을 인솔, 제암리에 도착한 뒤 이 곳에 거주하는 16~58세 남자 21명, 인근 고주리의 18~50세 남자 6명 등 모두 27명을 (제암리교회에 몰아 넣은 뒤) 총을 난사하고 칼로 베어 참살했다.

이어 인근에서 저항하던 여성 1명도 참살됐고, 또 다른 부녀자 1명이 유탄에 숨지는 등 모두 29명이 제암리 학살로 숨졌다. 아리타 중위가 부하들에게 명령해 가옥 27채도 불태웠다는 내용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더 기 막힌 것은 아리타 중위에 대한 군법회의의 무죄판단 대목이다. ‘범죄자를 처벌하려면 그에게 죄를 범하겠다는 생각(犯意)이 있어야 하는데, 피고의 행위는 훈시명령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피고는 범의가 없다고 봐야 한다. 또 과실범을 처벌하는 특별한 규정도 없으므로 피고에게 무죄를 언도한다’는 것이다. 자료를 발굴한 이원홍씨는 “아리타는 당시 부녀자 2명을 직접 일본도로 목을 쳐 살해한 자”라며 “이 무죄 논리는 세계 재판사상 유례없이 해괴망칙한 광언(狂言)”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일본에서 발간된 ‘우쓰노미야 일기’(宇都宮太郞 日記)’에는 ‘제암리사건 직후 우쓰노미야가 하세가와(長谷川好道) 조선총독을 만나 학살ㆍ방화를 일절 부정하자고 논의하는 내용과, 이후 전면 부정의 부작용을 우려해 학살ㆍ방화는 부인하되 진압 방법이 일부 부적절했다는 식으로 사건을 은폐 모의하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며 “아리타에 대한 재판도 제암리사건에 대한 일본 정부 및 군부 차원의 조직적인 책임은폐 및 축소 작업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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