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독립운동의 대가인가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빼앗긴 땅을 아직도 나라가 갖고 후손에게 돌려주지 않다니….”
독립유공자 후손 박창학(67)씨와 신재문(53)씨는 3ㆍ1절을 하루 앞둔 29일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의 뜻을 생각해 ‘나라 땅이 내 땅이려니’참고 살았지만 친일파 후손들이 땅을 찾겠다고 소송을 벌인다는 얘기를 듣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박정환(1884~1922ㆍ건국훈장 애국장) 선생의 손자인 창학씨는 전남 영광군 남천리 일대 2,000㎡의 땅을 찾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부동산소유권 확인소송을 준비 중이다. 원래 조부의 땅이었지만 조선총독부를 거쳐 현재 영광군 소유다. 조부는 호남의 재산가로 의병 운동, 독립운동 자금 지원 등을 하다 1922년 38세 때 순국했다. 박씨는 “할아버지는 일본총독부 재산 신고를 거부했고, 사망하자 재산이 총독부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신문배달로 고학을 하며 방송국 프로듀서로 자수성가한 박씨는 95년부터 조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조부의 재산을 돌려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건의를 거절했고, 광주광역시는 조부의 원적지를 알려달라는 요구도 거부했다.
박씨는 혼자 힘으로 조부의 독립운동 기록을 찾다 우연히 1919년 대구복심법원 재판기록에서 영광군 남천리에 면사공장을 짓고 그 자금으로 독립군을 양성했다는 내용을 발견했다. 박씨는 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토지대장 격인 ‘토지조사부’를 찾아 국가기록원 등을 헤맸고, 5년 만에야 영광군 문서보관함에서 조부가 소유주임을 증명하는 문서를 찾아 냈다.
의병활동을 했던 신인로(1871~1919ㆍ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의 증손자인 재문씨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증조부가 강원도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8년을 갇혀 있다 숨지자 집안은 풍비박산이 됐다. 신씨는 “조부와 부친은 일제의 감시로 고향에서 쫓겨나 재산 관리는 물론 소재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평창군 일대 2만3,000㎡의 증조부 땅을 찾았지만, 6,000㎡만이 중앙행정부처 소유로 남아 있었다. 신씨는 “조상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더니 ‘오랫동안 소유해서 돌려줄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제에 빼앗긴 독립운동가의 재산을 찾아주는 정부 차원의 제도나 법률은 전무한 상태다. 국회에 ‘독립유공자 피탈재산의 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이 계류돼 있지만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으로 17대 국회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위기에 놓여있다.
박관규 기자 qoo7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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