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그는 한때 유남규 안재형 김택수 등 80~90년대 한국 남자탁구를 휘어잡은 스타 플레이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주장 완장을 찼다. 그 역시 스타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180도 다른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탁구 불모지’인 예멘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탁구인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 탁구대표팀 선수로 활약했던 박지현(42) 코치. 박 코치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탁구단체선수권대회에서 4그룹으로 참가한 예멘 남자대표팀을 4연승으로 이끌며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국내 지도자의 길을 택하는 대신 전세계의 가난한 국가를 찾아 다니며 탁구를 매개로 한 사랑을 전파하고 있다.
탁구 불모지나 다름없는 예멘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건 지난 2003년부터. 박 코치가 편한 길을 뒤로 한 채 ‘고행’의 길을 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94년부터 2000년까지 몽골 대표팀의 코치로 지도자 경력의 첫 발을 내딛었다.
박 코치는 “가난한 국가에서 탁구를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몽골을 택했다”면서 “이슬람 지역에서는 예멘이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 게 탁구였다. 탁구를 통해 한국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박 코치가 이슬람 문화권에서 지도자 생활하기는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 틈만 나면 이슬람교로 개종을 요구했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탓에 첫 4년간 월급 170달러의 ‘박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해 이집트에서 열린 아랍올림픽에서 예멘 구기종목 사상 첫 동메달을 안기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14년에 이르는 외지 생활 탓에 딸 승주(14)와 민주(12)는 한국에서 산 경험이 없다. 이 점이 가장 미안하기도 하지만 가족들이 누구보다 자신을 믿고 따라줘 고맙기만 하다.
박 코치는 “탁구를 통해 세상과 단절된 사람들에 대한 가교 노릇을 하고 싶다. 이슬람 사람들이 외부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많고 외부에서도 이슬람인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많다”고 소박한 바람을 나타냈다.
광저우(중국)=김기범 기자 kik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