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직원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구속 기소된 전군표 전 국세청장과 건설업자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돈을 받은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 각각 실형이 선고됐다.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 고종주)는 27일 정씨로부터 6차례에 걸쳐 현금 7,000만원과 미화 1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씨에 대해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7,947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 진술을 하게 된 경위 등을 감안할 때 검찰의 공소내용은 사실로 인정되므로 부하 직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피고인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이 30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국가에 기여했고, 내부 직원으로부터 돈을 받았지만 청탁은 들어주지 않은 사실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돈을 줬다는 정씨와 이를 부인하는 전씨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이번 재판에서, 법원은 증거재판주의(사실관계 인정은 반드시 증거에 따르는 것)와 자유심증주의(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판단에 맡기는 것) 원칙을 적용한 끝에 정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우선 정씨가 국세청을 방문해 뇌물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시점에 건물 입구 폐쇄회로(CC)TV에 정씨가 촬영되지 않았다는 전씨의 주장을 “연금매장쪽 입구에 사각지대가 있어 일부 방문객은 찍히지 않을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국세청장 비서실 구조, 직원들의 진술 등을 근거로 돈을 받을 수 없었다는 전씨의 주장도 “국세청의 수장이었던 피고인의 지위를 감안할 때 합리적 증명력이 없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밖에도 “구속 후 1개월여 동안 지역 건설업자 김상진(43ㆍ징역6년 선고)씨로부터 받은 1억원의 용처를 밝히기를 거부하던 정씨가 전씨의 사주를 받은 이병대 전 부산청장으로부터 함구를 권고 받은 뒤 모멸감을 느껴 검찰에 뇌물공여 사실을 털어놓은 경위는 진실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전씨의 심리상태를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다’는 독일 철학자 니체의 말과 심리학의 ‘인지부조화’(왜곡된 과거의 기억이 확신으로 무장돼, 자신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다는 점을 의식 못하는 상태) 개념을 동원,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공직에 근무한 전씨로서는 인사와 관련, 금품을 받은 명예롭지 못한 사실이 드러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따라서 자기방어기제를 발동해 혐의사실을 부인하는 한편 자신의 잘못을 제3자에게 떠넘기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재판부는 지난해 8월 서울 종로의 한 한정식 집에서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의 소개로 알게 된 건설업자 김씨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수수)와 전씨에게 인사를 청탁하며 돈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로 구속 기소된 정씨에 대해서도 징역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부산=김창배 기자 kimc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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