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처럼 복잡하고 어렵고, 때로는 모호한 보험약관. 가입 전에, 그리고 보험료를 받을 만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물어보고 따져보고, 그리고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험사의 약관해석에 모두 맡겼다가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보험금도 한푼 못 받을 수 있다.
■ 단어의 함정
보험기간 중 병원에서 질병진단을 받고, 보험금 지급을 신청한 A씨. 그러나 해당 보험사는 약관을 들이밀었다. 보험기간 중 질병이 ‘발병’한 경우에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병이 있다는 진단을 보험기간 중 받았다고 해도, 가입자 진술이나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처음 병이 생긴 것은 보험계약 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보험사의 이런 해석을 듣다가 보면 잘 모르는 가입자는 어딘지 부당하다고 막연히 느끼더라도, 하소연할 때가 없다. 금융감독원은 “병원에서 질병을 진단 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옳다”고 설명했다.
‘~등’과 같은 사소한 표현도 약관에서는 중요하다. 면책조항에 이런 표현이 꽤 있다. 가스사고 피해액을 보상해주는 가스배상보험에서 ‘가입자 등의 고의로 인한 손해’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상당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즉 보험가입자가 일부러 가스사고를 일으킨 경우는 피해보상을 안 해 준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몰래 들어와서 일부러 사고를 일으킨 경우는 어떠한 지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면책 조항을 비롯해 보험 약관에는 ‘~등’이라는 표현을 없애고, 열거식으로 모든 조건을 명시하도록 할 예정이다.
■ 자동갱신 되지 않는 자동갱신
보험 약관에 등장하는 ‘자동갱신’ 표현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금물이다. 자동갱신이라고는 하지만 각종 조건이 붙고, 그 조건들을 종합해보면 ‘자동갱신’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동갱신’이라고 내세워 놓고 보험사가 기한이 만료될 때쯤 가입 여부를 다시 평가하는 식이 대부분이다. 금감원은 보험사가 자의적인 기준으로 갱신여부를 평가하는 경우는 ‘자동갱신’이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반대로 ‘자동갱신’의 함정을 오히려 이용하는 보험사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암 보험 같은 경우, 암이 발생해 보험금을 지급 받은 다음에는 보험계약을 끊어야 하는데 가입자가 나서지 않으면 계약이 자동으로 갱신돼서 계속 보험료가 납부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암 보험금은 최대 보장금액이 정해져 있고 그 금액을 한번 받고 난 후에는 보험계약을 유지하고 보험료를 납부해도, 또 다른 암에 대해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 자동갱신으로 억울하게 보험료만 내는 것이다. ‘자동갱신’의 함정인데, 암 보험료 등 이미 계약상의 최대 보장금액을 받은 가입자라면 혹시 아직도 모르는 사이 보험료가 나가고 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
금감원은 앞으로 ‘자동갱신’이라는 표현을 엄격하게 제한할 예정이다. ▦사무직 단체보험을 가입했는데 가입단체 성격이 노동직으로 바뀌는 경우처럼 보험의 전제조건이 무너진 상황, ▦암 보험처럼 추가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갱신이 가능할 때만 ‘자동갱신’이라는 표현을 보험약관에 쓸 수 있게 할 계획이다.
■ 보험금 못 받는 장애2급
상해ㆍ질병 보험에서 사고로 장애가 발생했을 때 장애등급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약관에서도 주의해야 할 게 있다.
한쪽 눈이 실명한 상태(장애6급)에서 상해보험에 가입했는데, 이후 사고로 다른 쪽 눈까지 실명해 장애2급을 받은 가입자는 실제로는 장애2급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 장애2급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고, 장애6급에게 2,000만원을 지급한다면, 그 차액인 1,000만원만 지급하는 식이다.
하지만 약관에는 이를 모호하게 표현해서, 마치 이전에 장애가 있더라고 해도 장애가 악화된 경우 최종 장애등급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가입자의 오해를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금감원은 애매한 약관 표현을 명확하게 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보험약관을 개선해 4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4월 이전 약관을 적용 받는 가입자들이라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새로운 약관은 기존 약관의 해석상의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현재 약관을 적용 받는 가입자라도 약관해석에 있어서 분쟁이 있을 때 새 약관을 토대로 유리하게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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