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은 2월 중순. 자정이 지나 상가의 셔터들이 하나 둘 내려지고 화려한 네온등이 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늦은 시간, 서울 한복판 명동거리 내려진 셔터 틈으로 요란한 망치질소리와 톱질 소리가 새나온다.
‘쿵쾅쿵쾅’ ‘쓱싹쓱싹’ 도심에 봄이 오는 또 다른 소리다.
‘내가 고작 이런 연장질 하려고 디스플레이어가 됐나’하는 푸념도 잠시. 아침 매장의 개장과 함께 도시인들에게 새로운 계절을 전달해야하는 디스플레이어에겐 잡념의 여유가 없다. 쇼윈도에 늘어선 겨울을 걷어내고 봄을 전시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까지 작업은 쉴 틈이 없이 고되기만 하다.
디스플레이어에게 쇼윈도는 고객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주는 곳이라 특별히 신경써야 할 공간이다. 공간 배치와 시안을 비교하고 또 비교해본다. 쇼윈도는 고객들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메시지를 한 발 앞서 전달하는 디스플레이어의 언어다.
화려함을 선보이기 위해 디스플레이어들이 작업하는 곳은 인적이 없는 어둠 속이다. 고독한 작업이다. 이 매장 저 매장을 다니며 그곳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며칠 밤을 꼬박 세우는 경우도 다반사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는 계절의 길목도 그리 힘들고 고독할까?
쇼윈도의 단장이 끝났다고 디스플레이어의 임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 고객들이 원하는 물건을 보다 빨리 찾을 수 있고 고객들의 동선 속에서 제품이 눈에 잘 띄도록 배치해 주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디스플레이어들이 만들어낸 도심 속의 봄. 작은 한 부분 한 부분들은 겨우내 디자인팀에서 머리를 짜내 준비한 결과물 들이다. 계절에만 방점을 찍어서도 안 된다. 그 속에 문화, 예술, 환경 등 고객들이 찾고자 하는 모든 메시지를 녹여야 한다.
이제 아침이 되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옷차림보다 먼저 다가온 ‘유리너머 봄’과 마주치게 된다. 디스플레이어와 고객들이 소통하는 순간이다. 밤새 흘린 땀이 행인들의 눈과 입가에서 보람으로 살아난다.
흐뭇한 순간도 잠시, 도심 속 계절의 전령사들의 머릿속은 이미 여름 문턱에서 분주하다.
사진.글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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