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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청설간서(聽雪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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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청설간서(聽雪看書)

입력
2008.02.2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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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경제팀장이 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택엔 ‘청설간서(聽雪看書)’란 액자가 걸려 있다고 한다. 조용히 내리는 눈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다는 의미다. 나라가 부도 위기로 치닫던 1997년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 선배가 보낸 액자라고 한다.

환란의 주범으로 몰려 공직을 떠난 후 그는 한동안 세상일에 젖은 육신으로 인해 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환란 당시 밤 12시전에는 퇴근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일했지만,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쏟아지는 비난에 분노가 이글거렸기 때문이다.

누가 불을 냈고, 누가 불길에 기름을 부었는가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불길을 잡은 자신과 당시 부하들은 나라망친 사람들로 매도당했다. 98년 환란 청문회를 준비하던 중 김석동 당시 외화자금과장(재정경제부 차관)이 “우리가 사람입니까? 짐승이지”라며 탄식할 때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강 장관은 마음의 불길을 잡은 후에야 비로소 육신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눈소리를 호수같이 고요해진 영혼의 귀로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환란 이후 10여년간 별다른 공직을 맡지 않은 채 사실상 야인 생활을 했다. 무역협회 상근부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시절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맡았을 뿐이다. 수석 경제부처의 차관을 지내면 번듯한 금융기관장 등을 맡는 게 관례였지만, 그는 철저히 소외됐다.

지난 10년간 미련이 남아 스치는 바람결에도 흔들리고, 술 한잔에 취하기도 했던 그가 경제팀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명박정부의 경제살리기를 총지휘하는 사령탑이 된 것이다.

이명박대통령이 내건 경제회복을 위한 규제 전봇대 뽑기, 투자확대, 일자리 창출 등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았다.

강 장관은 투자 촉진과 내수 확대를 통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규제 개혁과 법인세 등의 감세를 우선적으로 추진, 세계 최고의 기업환경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경제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는 것처럼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의 경기위축에 따른 글로벌 경제침체와 원유 곡물 값 급등 등 원자재대란이 경제를 옥죄고 있다. 물가는 치솟고, 무역수지도 지난해 12월 이후 적자로 돌아서 빨간불이 켜졌다. 투자 부진에 따른 성장잠재력 감퇴, 내수 위축, 고용 악화도 해법을 기다리고 있다. 거시경제 지표인 성장 물가 경상수지 등 세마리 토끼가 잡히기는커녕 저마다 도망가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환경이 나쁜 상황에서 새 경제팀장이 쓸 수 있는 묘책은 많지 않아 보인다. 금리를 내리면 물가급등이 우려되고, 확장적 재정정책 등 성급한 군불때기는 건전재정을 위협하고, 향후 경제운용에 큰 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와 감세를 통해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고,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근본 대책만이 경제의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그는 야인시절 펴낸 저서(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공직 생활 28년간 부가가치세 도입, 금융실명제, 금융자율화, 외환위기 수습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온몸으로 부딪쳤다고 회고했다. 그 투지를 다시 살려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도전들에 맞서 최선의 정책조합으로 응전하길 기대해본다.

이의춘 경제산업부장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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