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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평양의 미국인'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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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평양의 미국인'을 그리며

입력
2008.02.2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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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이 성공리에 진행되었다. 반세기 동안 적대적 관계이던 북한과 미국의 국가가 두 나라 국기가 걸린 현장에서 연주되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지휘자 로린 마젤은 연주곡을 친절하게 설명하였고, 한국말로 인사하는 성의까지 보여 주었다. '신세계' '파리의 미국인'과 북한 작곡가가 편곡한 아리랑이 연주되는 현장은 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 역사적 뉴욕 필 공연 생방송

'이념을 녹이는 선율,' '뉴욕필은 미국의 대사 역할,' '북한의 외교쿠테타.' '핑퐁외교에 버금가는 핑핑외교' 등으로 이번 공연을 보도한 전 세계 언론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공연은 남한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생중계 또는 녹화 중계됨으로써 문자 그대로 세계사적 이벤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50년 동안 지속된 북미 간 갈등이나 여전히 해결의 종착점이 불투명해 보이는 북핵문제가 공연 한 번으로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면 과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번 공연이 북미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대내외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한반도가 전쟁과 갈등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의 방향으로 전화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의 태도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공연 성사를 위해 정부적 차원에서 미국의 노력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북한 개방을 추구한 지속적인 국내외적 시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동구사회주의 몰락 원인의 하나로 외래 문화 유입을 생각하면서 문화 교류에 소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의 경우 국내외 언론에 적극적으로 개방하였다. 지극히 이례적인 국내 생중계까지 허용한 사실은 대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개방의 정도를 한 단계 높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에서는 '모기장'을 강조하였다. 외부 문화 유입을 경계하는 장치가 바로 모기장이었다. 모기장론의 핵심은 모기장을 쳤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창문을 열었다는 것으로 보는 게 올바르다. 다만 열어놓았던 창문의 폭이 너무 좁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공연은 북한이 창문을 더 열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공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미국을 절대악으로 간주해온 점을 생각하면 미국 대표악단의 공연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대내적 홍보와 실황중계까지 한 점에서 획기적 정책 정환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

외교정책을 포함해 중요한 정책의 시행과정에서 주민들에 대한 사전 교육 등을 중시하는 북한의 속성상 보다 적극적인 개방정책이 구체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 우리는 대결의식 탈피했나

문을 열고 나가려면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바깥의 분위기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좀더 문을 열어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이며, 바깥 세상이 좀더 따듯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노력도 중요하다.

로린 마젤이 말했듯 평양에서 보다 많은 미국인들을 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평화와 공존을 증명하는 것이며, 북한이나 미국 우리에 좋은 일이 된다.

북한과 미국은 이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는데, 우리만 과거의 대결의식에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문자 그대로 기우이기를 바란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

<저작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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