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의 독립 선언으로 들끓고 있는 세르비아가 폭력 사태 확산이냐 진정이냐의 기로를 맞고 있다. 미 대사관 방화 등 폭력 시위에 대한 책임을 두고 세르비아 정부 내 민족주의 친 러시아파와 민주주의 친서방파간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력 사태로 1명이 숨지고 150여명이 다친 데 대해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이 높지만 세르비아 민족주의 세력은 일제히 미국으로 책임을 돌렸다. 슬로보단 사마르지치 코소보 담당 장관은 “폭력 사태는 코소보 독립이란 국제법 위반에서 비롯됐다”며 “미국이 모든 폭력 사태의 최대 범인”이라고 비난했다.
사마르지치 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세르비아계가 다수인 코소보 북서부 지역에서 발생한 유엔과 코소보 정부 건물, 경계 표지판 등에 대한 공격에 대해 “합법적”이라며 두둔했다. 강경 민족주의 핵심 축인 토미슬라브 니콜리치 급진당 총재는 연일 “코소보를 다시 얻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시위대를 선동하고 있다. 세르비아 정부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보이슬라브 코스튜니차 총리는 폭력 사태에 대해 짤막한 유감 성명을 발표했지만, ‘코소보를 잃은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 위해 민족주의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서방파는 폭력 사태를 강력 비난하며 시위 주동자 색출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23일 “시위자 200여명을 체포해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타디치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서방파는 코소보 독립에는 반대하지만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만큼 폭력 확산 저지에 힘을 쏟고 있다. 드라간 수타노바크 국방장관은 “국수주의 정치인들이 폭도를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폭력시위가 정부 내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조장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아직은 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배후 세력에 의한 조직적인 폭력 시위 라기 보다 학생이나 실업자 등에 의한 감정적인 분노 표출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 국민 다수가 유럽연합(EU) 가입을 통한 서방화를 지지했기 때문에 폭력 사태가 조만간 진정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 세력이 코소보 독립을 계기로 러시아와의 연대 강화를 주장해 세르비아의 앞날을 쉽게 점치지 힘든 상황이다. 시위 현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연호하는 소리가 커지는 등 세르비아가 급격히 러시아로 향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자칫 분노한 국민 여론에 떠밀려 서방과 결별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차기 러시아 대통령이 유력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부총리가 다음달 2일 베오그라드를 방문키로 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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