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이 살인범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는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미국 위스콘신주 형사재판의 배심원단은 1998년 12월 일어난 줄리 젠슨이라는 40세 여성의 변사사건과 관련, 남편을 살인범으로 단정하고 유죄 평결을 내렸다.
당시 줄리 젠슨이 숨진 채로 발견되자 검찰은 처음부터 주식중개인인 남편 마크 젠슨(48)이 부동액으로 아내를 중독시킨 뒤 질식사시켰다고 주장했으나, 마크 젠슨은 아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자신을 살인범으로 모함할 함정을 파놓은 뒤 자살했다고 반박하며 무고를 하소연했다.
하지만 젠슨은 변을 당하기 전 남편의 수첩 등 소지품을 꼼꼼히 조사한 뒤 거기에 적혀 있는 약과 알코올에 관한 기술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 한편 남편의 행동이 수상하다는 메모를 작성했다.
줄리 젠슨은 이렇게 만든 메모 기록과 사진을 평소 가깝게 지내온 이웃 사람에게 편지와 함께 맡기면서 자신은 절대로 자살하지 않을 것이나 신상에 어떤 불상사가 일어나면 경찰에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가 사망한 뒤 메모와 편지가 수사 당국에 건네졌지만 위스콘신주의 법원은 풍문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연방 대법원의 판례를 원용, 풍문이라도 예외적으로 증거로 채택하는 케이스가 있다고 주대법원이 종전 판결을 번복하면서 줄리 젠슨의 메모가 유력한 증거로 법정에 제출돼 심리를 받게 됐고, 주대법원도 줄리의 메모와 편지를 죽음을 앞둔 시기에 모든 진실을 고백하는 것으로 받아 들이는 데 동의했다.
법정에서 “내 생각이 틀려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마크의 행동이 이상해 내가 조만간 죽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는 줄리 젠슨의 메모가 낭독되자 배심원단은 술렁였다.
심리에 참가한 배심원 매튜 스미스는 “피해자의 죽음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마크 젠슨이 유일하다. 그는 실제로 집과 아이들을 얻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배심원들은 줄리 젠슨의 메모에 관해 “남편이 범행에 나서기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는 로드맵을 확인해주는 완벽하고 명쾌한 기록”이었다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다른 배심원 샌드라 쇼트는 “줄리 젠슨이 자신에 대한 법의 정의를 구현받게 됐다”며 “이제 편안히 영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원했다.
한 배심원은 “지금 줄리 젠슨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진상을 규명하는데 10년씩이나 걸려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배심원단이 유죄 평결을 내림에 따라 켄노샤 카운티 순회법원은 오는 27일 마크 젠슨에 대해 형량을 구형하는데 1급 살인죄를 적용,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할 전망이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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