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국일보 사회면에 묘한 기사가 실렸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국민들은 '조마조마'>라는 제목이었다. 태안 원유유출 사고부터 숭례문과 정부중앙청사 화재까지, 정권교체기에 대형 사고와 사건이 잇따르자 국민이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반응과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 가운데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들을 소개한 것인데, 간단히 흘려버릴 수만 없는 심각성이 있다. 기사에는 없지만 "관악산의 화기(火氣)가 숭례문을 무릎 꿇리고 세종로를 넘어 진군하는가?"라는 글까지 있으니 '흉흉한 민심'이 아닐 수 없다.
■호사가들의 입방아는 "광화문을 수리하느라 그 앞의 해태 석상을 치우는 바람에 숭례문 화재를 막지 못했다"는 데까지 이르러, 해태상이 제 임무를 못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무심함을 질타하는 댓글이 크게 번지고 있다.
대표적 국난인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예로 들어, 그 직전에 숭례문 일부에서 불이 났고 성벽 붕괴사고도 있었다며 '나라의 흉조'를 근심하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화재라면 당연히 흔적이 남았을 조선왕조실록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1950년 6월 25일 직전에 큰 뉴스가 됐을 성벽 붕괴에 대한 언론 보도도 없었다.
■'흉흉한 민심'의 핵심인 광화문 해태상에 대해 알아보면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해태상은 원래 육조거리, 지금의 세종로 가운데 사헌부(검찰청) 대문(미 대사관 자리)에 세워졌다. 해태는 그 부릅뜬 눈을 보아 짐작할 수 있듯, 정치의 잘잘못을 가리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상상 속 동물로 사헌부의 역할에 딱 맞는 상징이었다.
유독 그들의 관복에만 해태를 새긴 것도 그 때문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신축하면서 한 쌍의 해태상을 세운 의미도 '눈을 부릅뜨고 너희의 행동을 지켜보리라'는 의미였지, 대리석 건물의 소화기 역할이 아니었다.
■해태는 불을 삼키기도 하고 뱉기도 한다고 해서 화기를 다스리는 상징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조선 초기 한양 천도와 경복궁 건립을 둘러싸고 이성계와 이방원, 무학대사와 정도전, 불교와 유학파 사이에 알력이 심각했을 때 음양오행과 풍수지리가 타협의 논거가 되었던 것도 엄연한 역사다.
한데 "숭례문 화재가 나던 날 발표된 청와대 수석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5명이나 돼 관악산의 화기가 최고조에 달했다"고 '정황증거'를 들이대는 대목에선 어이가 없다. 혹시 화재의 책임자들이 "내 탓이 아니라 관악산 탓"이라고 둘러대는 수작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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