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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신파로 두텁게 채색한 70, 80년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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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신파로 두텁게 채색한 70, 80년대의 풍경

입력
2008.02.2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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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발행ㆍ168쪽ㆍ9,000원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맺는 김광섭(1905~1977)의 시 ‘저녁에’ 속 구절을 제목으로 취한 이 소설은 두 겹의 신파다. “박정희가 아직 살아 있고” “게시판에는 표현주의영화 포스터들이 붙어” 있던 70년대 대학의 음악감상실에서 포르노 잡지를 보다가 잠든 스무살 대학생 ‘나’가 기타를 세워두고 곤히 잠든 ‘박은영’을 실수로 깨운 순간 첫 신파-액자소설의 액자에 해당하는-가 시작된다. “나는… 그 즉시 그녀가 내 인생 최초의 진정한 포르노-플라토닉 러브의 상대가 될 것이라고 장엄하게 선포했다.”(19쪽)

하지만 ‘나’가 학생회관에서 산 커피를 “구정물” 같다며 마시길 거부한 ‘까칠한’ 그녀는 “십만 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노래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망상’이라 치부한 ‘나’의 ‘낭심’을 대차게 걷어차곤 유유히 자리를 뜬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싶던 두 남녀는 이후 세 번 조우한다.

몇 달 뒤 캠퍼스 근처 주점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다 갑자기 흐느끼며 나가버린 그녀를, 87년 최루탄 가루로 매캐한 혜화동 로터리에서 구두가 망가져 당황하는 그녀를, 마흔이 훌쩍 넘어 웬 낯선 청년의 초대로 찾은 카페에서 병약한 뒷모습의 그녀를 ‘나’는 만나고야 만다. 이 띄엄띄엄한 만남들의 막간 사연이 밝혀지면서 ‘박은영’이 홀로 감당했던 또다른 신파가 모습을 드러낸다.

38세 늦깎이로 등단해 부지런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이상운(49ㆍ사진)씨는 그 자신이 젊은 시절을 보낸 70, 80년대의 풍경 위에 작정한 듯 신파의 무늬를 그려넣는다. 두 중심인물의 상처는 일정 부분 그 시절 고유의 상황에 기인한 것이긴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상형에 가까운 순정한 것이다.

‘박은영’과의 어긋난 사랑을 “우리는 시시한 수수께기들이다”(파스칼 키냐르)란 가설 하에 정리해보려 했던 ‘나’가 그녀가 청승맞게 견뎠던 시절을 “그 순진하고 순수한 꿈과 열정을 어떻게 시시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157쪽)라고 다독일 때 작가의 뜻은 명료해진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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