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새벽 불이 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는 국무조종실, 교육인적자원부, 행정자치부, 통일부 등 정부 주요 부처가 밀집한 행정의 최중심이었지만 스프링클러 등 기본적인 방화시스템조차 갖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행정 1번지가 화재에 무방비 상태였던 셈이다.
1970년 12월 완공된 중앙청사는 73년부터 11층 이상 고층 건물의 경우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조항의 소방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앙청사 신축 당시인 60년대 말 소방법에는 스프링클러 설치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60년대식 건물이어서 스프링클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소방방재청 소방제도팀 이은군 계장은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기 전에 지어진 중앙청사 등 고층 건물은 30㎝ 이상의 층고 여유가 있어야 설치가 가능한데 대부분 그런 공간적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 설치 등 방재시설 설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매번 지지부진했다. 최양식 행자부 제1차관은 “95년 5월에도 스프링클러 설치를 검토했지만 수원(水源) 확보나 배관 옥외 노출 문제 등으로 보류됐다”고 말했다.
99년 7월 중앙청사 4층 통일부 사무실에서 소형 선풍기 모터 과열로 인한 누전 화재 이후 나온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 땜질처방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화재를 계기로 정부는 청사 내 소방시설 등에 대한 일제 점검에 나섰지만 끝내 스프링클러는 설치하지 않았다. 예산이 부족하거나 전면 리모델링 논리에 눌린 것이다.
정부는 결국 화재 이후 최근까지 9년간 별 다른 방재시설을 갖추지 않고 청사 방호원(16명)과 소화기 수백여대, 각층에 마련된 실내 소화전 3곳 등에만 의존한 채 ‘원시적인’ 진화방식을 고수해 오다 화를 자초한 셈이다.
한편 정부는 이날 오전 윤대희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회의를 갖고 화재원인과 문서손실 등을 포함한 사고피해 및 대책을 논의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불이 난 곳이 정책부서가 아니라 행정지원부서이기 때문에 중요한 결재 서류는 전자결재 시스템에서 보관하고 있어 업무처리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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