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 용문산에 추락한 육군 UH-1H 헬리콥터는 위성항법장치(GPS)도 없이 기상이 나쁜 야간 비행을 하면서 한차례도 지상의 비행협조소(FCC)와 교신하지 않았다고 육군이 21일 밝혔다. 이와 관련, 육군은 당초 조종사와 "광탄비행장을 지나고 있다"는 교신을 한 직후 헬기가 추락했다고 발표했다가 "교신이 없었다"고 말을 바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헬기 이륙 왜 안 막았나
용문산 헬기 추락 사고를 조사 중인 육군은 "당시 용문산 일대는 짙은 안개로 5~10m 앞도 분간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국지적인 기상 악화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1,115m 산 능선에 충돌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헬기는 보통 지상의 도로 등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항로를 잡기 때문에 사고 헬기도 용문산 부근 6번, 44번 국도를 따라 비행하다 짙은 안개 때문에 방향을 잃고 산 능선에 부딪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육군은 헬기의 통신 녹음 테이프를 수거해 분석,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용문산 부근에서 '계기 비행으로 전환하시죠. 계속 구름 속을 지나고 있습니다. 고도 올리세요. 2,000피트(609m), 3,000피트(914m)'라고 대화한 내용을 확인했다.
하지만 기상 탓이라고 하더라도 사전에 헬기 이륙을 막거나 용문산 부근에서 비행통제를 할 수 없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육군 당국자는 "당시 평지 기상으로는 헬기가 뜰 수 있는 시계와 풍향이었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이륙할 때에는 비행 가능 시정 2마일(3.2㎞)을 확보했지만 이동 중 국지적으로 기상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FCC는 "비행 중 조종사가 항로의 기상이 나빠질 것으로 보고 정확한 정보를 요구했을 때 공군 등에 확인해서 정보를 제공할 뿐 자체 기상 파악 능력이 없다"는 것이 육군의 설명이다. 사고 헬기는 비행 중 한 차례도 FCC와 교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FCC는 당시 용문산 일대의 기상 상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지상과의 교신 없었나
한밤 중에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짙은 안개를 보면서 조종사는 왜 FCC에 기상 정보나 비행 통제 요구를 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사고 헬기는 비행 중 지형지물 파악에 중요한 장비인 GPS를 장착하지 않은 상태여서 안전 비행을 위해 지상과의 교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군 관계자는 "GPS 장치가 없는 헬기로 비행할 경우 지상관제부대와 교신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육군은 20일 오전 사고 상황을 설명하면서 추락 직전 헬기와 "광탄비행장을 지나고 있다"는 교신이 있었다고 발표했다가 이날 밤 늦게 "비행 중 교신은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비행 중 교신이 있었다면 용문산 일대 기상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적절하지 않은 비행 통제 책임이 제기될 수 있다. 육군은 "사실 확인 과정에서 의사전달이 잘못돼 일어난 단순 실수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육군 당국자는 "훼손된 상태이긴 하지만 사고 현장에서 헬기의 통신 녹음테이프를 수거했다"며 "녹음 내용과 환경 요인 등을 정밀 분석하면 3, 4주 뒤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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