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멓게 변해버린 백사장과 바위를 놓아두고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최민주(27ㆍ여ㆍ서울시 송파구 마천동)씨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해수욕장 앞바다 닭섬과 원골섬을 오가며 42일째 모래와 바위에 묻은 기름찌꺼기를 닦아내고 있다. 최씨가 태안을 찾은 것은 사고가 난 지 한달여 만인 1월 11일. 최씨는 “처음엔 그저 며칠 현장에서 작은 도움이라도 되겠다고 시작했는데 벌써 한달을 훌쩍 넘겼다”고 회고 했다.
“첫날 자원봉사 때는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할 일도 많고, 또 처음 하는 일이라 녹초가 됐지요. 하지만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죽어가는 갯벌 생물과 시커먼 모래와 바위가 그의 발길을 붙잡아 놓은 것이다.
서울에서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는 최씨는 학원을 어머니와 교사들에게 맡겨놓고 눌러앉아 건반 대신 흡착포와 걸레를 들고 갯돌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고 있다. 그는 현지에서 36일째 봉사활동 중인 이성우(27ㆍ대전시 중촌동)씨 등 10여명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봉사활동에 들어간 비용만해도 200만원이 넘고 겨울바람에 온몸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기쁘기만 했다. 최씨는 “기름범벅이 된 조약돌이 내 손끝을 거치면 뽀오얀 색과 아름다움 모습을 드러내는데 정말 행복했다”며 웃었다. 그가 집에 다녀온 것은 달랑 두 번이다. 가져온 돈 50만원이 떨어졌을 때와 설 연휴 자원봉사활동이 중단됐을 때다.
그는“봉사기간 내내 아프지 않던 몸이 설 연휴 쉬는 날 몸살이 걸린 자신을 보고 놀랐다”며 “달력에 하루하루 봉사일수를 표시하는 자신이 미워질 때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태안의 기적을 이룬 허베이스피리트호 서해기름유출피해 자원봉사자수가 21일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날까지 자원봉사자수는 연인원 100만152명으로 인천항만공사 외항운항팀 소속 박무동(48)씨가 100만번째 자원봉사자로 선정됐다. 또 현재까지 태안 봉사활동을 가장 오래한 사람은 서울 강서구에 사는 이봉전(66)씨로 지난해 12월10일부터 1월30일까지 총 48일간 방제작업을 한 후 돌아갔다.
충남도는 이날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해수욕장 인근 홍익대연수원에서 ‘기름 피해지역 자원봉사 100만명 돌파 기념행사’를 열고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태안=글ㆍ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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