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제작소는 며칠 전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 퇴임 대통령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새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공적 자산인 퇴임 대통령의 바람직한 역할을 조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면 9번째 전직 대통령이 된다. 이 가운데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이 5명이나 된다. 단임제인데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 많은 전직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과 역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느냐가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퇴임 대통령은 현직에서의 성패와 상관없이 훌륭하게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
바람직한 전직 대통령의 전범으로 꼽히는 미국의 지미 카터는 이란 인질 구출 실패 등으로 미국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려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퇴임 후 고향 애틀랜타에 카터 센터를 세워 국제 인권 신장에 힘쓰는 한편, 세계 곳곳의 가난한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열성을 다했다. 북핵 사태 등 국제 분쟁 해결에도 기여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데라도 퇴임 후 재단을 만들어 노인, 에이즈, 인권, 어린이 문제에 몰두하며 사회적 약자를 돕는 자선활동을 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존경 받는 퇴임 대통령의 역할을 다했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환경 문제에 관심을 쏟는 등 나름대로 국가와 인류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의 전직 대통령도 국정 경험과 높은 지명도를 공익을 위한 봉사와 자선 활동 등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특히 재임 5년간 외국 정상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 및 유력 인사들과 쌓은 친분은 더 없이 값진 자산이다. 전직 대통령은 월 1500만원의 급여를 받는 데다 3명의 비서관을 둘 수 있고, 기념사업에 대한 국가 지원도 받는다.
이런 예우는 단순히 노후를 편히 지내라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현직에서 못다 한 정치를 계속하라는 의미는 더욱 아니다. 자신과 국가와 사회를 위해 품위 있고 유익한 활동을 하도록 국가와 사회가 배려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퇴임 대통령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다양하다. 자서전을 쓰는 등의 저술 활동과 강연을 할 수 있고, 기념관을 만들어 국정 경험을 전하고 각종 사회 이슈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정치 활동은 늘 매력적일 수 있으나, 그보다 사회의 소외된 곳을 밝혀주는 자선 봉사와 문화, 인권, 환경개선 등 비정치적 활동에 힘쓰는 것이 소망스럽다.
특히 우리처럼 파당적 정치의 폐해가 큰 사회에서는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국가 원로 역할이 절실하다. 재임 중의 제로-섬 정치에서 벗어나, 플러스-섬의 사회 통합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하다.
희망제작소 심포지엄에서도 곧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노 대통령은 다른 전직 대통령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환갑을 갓 지난 비교적 젊은 나이와, 퇴임 후 김해 봉화마을로 낙향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으나, 주제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그가 정치평론가 노릇을 하는 등 현실 정치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일 것을 걱정했다. 노 대통령은 초당적 또는 비정치적 활동에 머물러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다른 뜻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미 카터가 '실패한 현직, 성공한 전직 대통령'으로 평가 받는 것은 고향 조지아에서 정치를 벗어난 사회기여 활동에 헌신한 때문이란 교훈을 외면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수종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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