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누가 어떤 채널을 통해 먼저 후판(선박용 강판) 물량을 확보하느냐가 성패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가격도 문제지만 투기를 노린 매점매석까지 횡행하고 있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S중공업 L전무)
주력산업의 원재료들이 천정부지로 오르는데다 원료마저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산업계가‘원자재 대란’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철광석과 유연탄 가격의 폭등은 철강과 자동차, 조선, 전자업계 등 주력산업의 원가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판매감소는 물론 수익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정유와 유화업계는 원유와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가격 급등으로 조업차질을 빚자 아예 생산량을 줄이며 내핍경영에 들어갔다. 항공과 해운업계는 고유가 쇼크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원자재 확보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야는 철강업계. 원료인 철광석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세계 철강업계가 가격을 불문하고 철광석 구하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3위의 철강업체 포스코는 최근 브라질 발레사와 협상을 통해 올해 철광석을 지난해보다 65% 비싼 톤당 78.9달러에 도입키로 했다. 인도산 철광석의 현물가격은 지난해 1월 톤당 79달러에서 올해 1월 187달러로 2.4배나 뛰었다. 호주산 유연탄 현물가격도 같은 기간 톤당 90달러에서 220달러로 급등했다.
철광석과 유연탄 가격 상승은 포스코의 철강재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조선, 자동차와 전자, 기계 등 주력 제조업체들에게 원가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철강 수요업체들은 원부자재 가격 상승을 제품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최근 수년간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린 조선업계도 후판 가격의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본 신일본제철은 최근 현대중공업에 후판 가격을 톤 당 220달러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지난해 협상가격(625달러)에 비해 38%나 급등한 수준이다. 중소 조선소들은 대형 조선소에 비해 협상력이 약해 철강업계의 가격인상 요구를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자동차나 전자업계는 원자재 가격 상승도 문제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로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판매가 감소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최근 자동차용 강판이나 타이어 등 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원가부담이 커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자동차 판매가에 반영하기도 어려워 곤혹스러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 급등은 유화업계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국내 유화업계는 원재료인 나프타의 국제 가격 급등세가 지속되자 최근 감산에 돌입하는 등 힘든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나프타는 지난해 1월 톤 당 530달러 선이었으나 1년 만에 880달러로 급등한 것. 지난 20일 싱가포르 현물거래소에선 장중 9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유화업계는 생산을 할수록 손해가 커지고 있다면서 추가 감축도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GS칼텍스는 벤젠톨루엔자일렌(BTX)과 파라자일렌(PX)을 생산하는 여수공장 가동률을 90%로 낮췄다. SK에너지도 BTX 생산설비 3기 중 하루 1만5,000배럴 규모 1기 라인을 지난해 10월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항공과 해운업계 등은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으로 유류비 비중이 높은 노선을 일부 조정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일부 화물노선의 변경 또는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경우 300억원가량, 아시아나는 70억원의 유류비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기내에 탑재하는 세숫물까지 줄여 가며 항공기 무게를 줄이는 등‘왕소금 작전’을 벌이고 있다.
유가가 총 매출원가의 10% 이상 차지하는 한진해운과 한진해운 등 해운업계는 기름값이 싼 로테르담(유럽)과 싱가포르(아시아) 항구에서 유류를 구매하는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이병욱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원자재가격 급등이 수익성 악화와 투자 위축, 감산, 소비자 물가 상승 등의 악순환을 가져와 산업 전반의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업계와 공동으로 원자재대란 실태를 점검해서 대책마련을 서둘러 산업계의 어려움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박기수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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