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표심 앞에선 '백약이 무효'
4단계 방카슈랑스 철회는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다. 철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찌감치 시행 연기가 대세로 받아들여졌다. 은행장들이 21일 오전 긴급 대책회의를 갖기로 했지만, 뒷북의 성격이 짙다.
은행권에서는 자성과 한탄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4단계 방카슈랑스 전쟁에서 은행권이 패할 수밖에 없었던 4가지 이유를 꼽아봤다.
하나, 표심에 졌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총선이 1년 뒤였다면 결과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총선만 아니었다면 정치권이 굳이 보험업계의 손을 들어줬을 리가 없었다는 얘기다. 국내 보험설계사는 30만명 가량. 이들 가족까지 합치면 족히 100만명에 육박한다. 여ㆍ야 모두 100만표 앞에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많지 않았다.
둘, 절박함이 달랐다
보험업계에 방카슈랑스는 곧 생존의 문제였다. 막대한 판매망을 갖춘 은행에 밀려 보험업계의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상당했다. 특히 30만명 보험설계사들은 자칫 거리로 나앉을 수 있을 만큼 절박한 사안이었다.
반면, 은행과 은행원들은 달랐다. 방카슈랑스를 확대 시행하지 않는다고 은행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방카슈랑스는 은행의 부업일 뿐이다. 방카슈랑스에 생존이 달린 은행원도 없었다. 그만큼 대응도 안일했다.
셋, 결집력이 약했다
보험업계는 일사분란했다. 생ㆍ손보협회와 대형 보험사를 중심으로 확실한 역할 분담을 통해 업계의 입장을 설파했다. 당초 방카슈랑스 4단계 시행을 내심 기대했던 외국계나 중소형 보험사들도 협조했다.
설계사들은 방카슈랑스 확대 시행 시 파업을 하겠다며 힘을 보탰다. 한 마디로 똘똘 뭉쳤다. 반면, 은행권은 어설펐다. 방카슈랑스 확대 시행이 필요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도 못했고, 적극적인 행동도 없었다.
넷. 자업자득이다
대출에 보험을 끼워 팔기도 했고, 충분한 고지 없이 보험을 마구 판매하기도 하면서 민원이 들끓었다. 한 때 계열사 보험만 집중적으로 팔기도 했다. 만약, 은행측이 이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보험사들의 공세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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