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응급환자 수송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 발생한 육군 UH-1H 헬리콥터 추락 사고의 원인과 관련, 육군은 일단 기상 악화에 따른 비행 사고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조종사가 4,318시간 비행 경력의 베테랑이고 사고 헬기가 운용수명(40년)을 훌쩍 넘긴 노후 기종이어서 기체 결함에 따른 사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야의 이륙과 귀환
육군에 따르면 항공작전사령부 제13항공단 204 항공대대 소속으로 혹한기 훈련을 위해 강원 홍천기지에서 대기 중이던 사고 헬기는 19일 밤 11시55분께 기지를 이륙했다. 오후 8시께 부대에서 세면을 하던 도중 수도꼭지에 머리를 부딪쳐 뇌출혈 증상을 보인 육군 모 군단 윤모 상병에 대한 정밀 검사를 위해 윤 상병을 홍천 국군철정병원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군 최상급 헬기 조종 실력을 갖춘 ‘표준교관 조종사’인 신기용(44) 준위가 모는 헬기는 이륙 10여분만에 철정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서는 군의관 정재훈(33) 대위, 간호장교 선효선(28) 대위와 의무병들이 환자와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의료진과 환자를 싣고 이륙한 헬기는 20일 0시40분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해 환자가 응급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15분만에 다시 이륙했다. 귀환 비행시간은 30여분 정도로, 먼저 철정병원에 도착해 의료진을 내려준 뒤 홍천기지로 돌아가는 항로였다.
그러나 지상관제소와 몇 차례 교신하며 이상 없이 비행하던 헬기는 이륙 후 15분이 채 지나지 않은 오전 1시9분께 경기 양평군에 있는 “광탄비행장을 지나고 있다”고 보고한 뒤 바로 레이더에서 자취를 감췄다. 육군은 오전 1시10분께 사고 헬기가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상 악화? 기체 결함?
사고가 나자 육군은 사고 지점 인근의 20사단 병력과 철정병원 장병을 동원, 수색에 나섰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고 헬기를 찾고 있던 군은 오전 3시52분께 부조종사 황갑주(35) 준위의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추락 지점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양평군 용문산 정상 남쪽 해발 1,000여m 지점에서 발견된 기체는 두동강이 난 채로 산 능선에 처박혀 있었다. 추락하면서 바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탑승 장병 7명의 시신도 이날 오전 모두 수습했다.
육군은 야간인데다 비행 당시 “용문산 정상에 부분적으로 운무가 있었다”는 기상 정보를 토대로 시계가 나빠 조종사가 용문산 정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육군 당국자는 “사고기는 지난해 10월 엔진을 교체했으며, 이달 1~11일 정비를 실시해 기체 결함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고 헬기는 미군이 1966년부터 20여년 동안 사용했던 중고기를 90년에 도입한 것으로, 이미 운용수명 40년을 넘긴 노후기여서 기체에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가장 최근 발생한 2003년 8월 경북 영천의 UH-1H 추락(7명 사망) 사고도 기체 결함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육군 당국자는 “1990년 이후 발생한 9건의 UH-1H 추락 사고 중 2003년과 92년 사고는 기체 결함으로, 99년과 96년 등의 사고는 조종사 실수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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