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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현해탄을 넘어 '37년만의 手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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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현해탄을 넘어 '37년만의 手談'

입력
2008.02.2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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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조노 선생, 저 이남깁니다. 알아보시겠어요?” “오, 이상.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너무 너무 반갑습니다.”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오랜 바둑 친구들의 만남은 조금도 스스럼이 없었다. 원기 왕성했던 대학생 때 처음 만나 이제는 어느덧 환갑 전후의 노장이 됐지만 두 사람은 금방 37년 전으로 돌아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바둑돌 통을 앞으로 끌어 당겼다.

지난 주말(16일)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열린 제5회 한일 대학바둑OB교류전에서 한국 대표 이남기(62)씨와 일본 대표 나가조노 세이조(中園淸三ㆍ58)씨 간에 37년 묵은 특별한 바둑 사랑 이야기가 공개돼 잔잔한 화제가 됐다.

이씨는 서울 공대 재학 시절 전국 대학생 바둑 대회를 3연패하는 등 맹위를 떨쳤고, 특히 1980년대초 코오롱 홍콩 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홍콩 바둑계를 수 년 동안 완전히 평정했던 대학 바둑계의 전설적인 인물. 한편 나가조노씨는 호세이대 대표 선수 출신으로 ‘4천왕’ 이후 최근 일본 아마추어 바둑계의 실질적인 1인자로 손꼽히는 고수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뤄진 자리는 1971년 일본에서 열린 한일 대학생 바둑 대회였다. 이남기는 임동욱 김병준(이상 서울 치대) 차민수(동국대) 김인유(고려대) 등과 함께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가 일본 대표로 나온 나가조노를 만나 첫 눈에 호적수임을 알아채고 단박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서로 의기 투합, 대회 기간 내내 밤잠도 안 자고 계속 수담을 나누었지만 그래도 막상 귀국하고 나니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고 통신 수단도 썩 좋지 않던 시절이어서 두 사람은 궁리 끝에 편지 대국을 시작했다.

기보 용지에 서로 한 수씩 번갈아 그려 보내되 동시에 다섯 판을 두는 일종의 다면기 방식이었다. 보통 편지 한 통이 오가는 데 1주일 이상 걸렸으므로 한 달에 10수도 채 진행되지 않았다. 이렇게 1년 반 정도 편지 대국이 진행되다가 안타깝게도 이 씨가 직장 때문에 갑자기 주소를 옮기면서 미처 바둑을 끝내지도 못한 채 그만 편지 왕래가 중단됐고 이후 소식이 끊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30여년이 흘렀다.

그러다 수 년 전부터 과거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 대표 선수로 활약하던 바둑인들이 서로 번갈아 방문하며 교류전을 시작했다. 초창기 때부터 한일 대학바둑OB교류전에 열심히 참여했던 나가조노 씨는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 대표팀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자신과 이남기 씨와의 사연을 말했는데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신병식 당시 한국대학바둑연맹회장과 이 씨가 고교 동문인데다 오랫동안 같은 기우회에서 활동했던 절친한 사이였던 것. 그래서 그 동안 현직 은퇴 후 대학 바둑계와는 약간 거리를 두고 지냈던 이남기 씨를 수소문해서 이번에 대표 선수로 출전토록 해서 37년만의 재회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37년 만에 다시 만난 두 호적수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회포를 푸는 것도 잠깐이었다. 마치 엊그제 헤어졌던 사람처럼 바둑판 앞에서 금방 바둑 삼매경에 빠졌다.

한편 제5회 한일대학바둑OB교류전은 한국이 20승16패로 우승했다. 내년에는 오사카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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