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XX, 내가 카지노에 뿌린 돈이 얼마인데… X같은 놈.” 벌써 1시간 넘게 똑 같은 욕을 해댄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부르르 떨던 주먹(합기도)을 상대의 얼굴에 날린다. 술에 취한 덩치를 바람처럼 메다꽂고(유도), 엉거주춤 일어서는 상대를 돌려차기(태권도)로 마무리한다. 그리고는 사자의 포효를 외친다. “나는 대한민국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 안전지킴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술 한잔을 걸치고 동료들과 상상 속에서만 펼치는 것일 뿐 실제 상황은 아니다.
유도 태권도 합기도 특공무술 정도술 용무도 검도 등 무술 실력을 합쳐 보통 10단이 넘는 강원랜드 카지노 안전요원들은 의외로(?) 주먹을 아낀다. 무협영화 속 진정한 고수가 웬만해선 필살기를 꺼내지 않듯 카지노 안전요원도 함부로 무공을 쓰지 않는다.
한해 평균 340만여명(지난해 기준)이 찾는 강원랜드 카지노는 요지경 세상이다. 평범한 장삼이사도 많지만 주먹께나 쓴다는 각 지역 건달에서 도박이나 알코올 중독자, 돈 잃고 떼쓰는 사람, 온갖 변태와 폐인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대박을 찾아 이곳에 온다.
고객들이 한해 잃는 돈이 1조원이 넘으니(카지노 매출ㆍ2007년 기준) 그들이 느끼는 분노와 낭패, 좌절이 자해 공갈 협박 등의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 그러다 보니 이들로부터 ‘카지노의 평화’를 지키는 안전요원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안전요원이 전하는 실제 사례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옷을 홀랑 벗고 시위하는 아저씨, 콘돔을 반입하다 들킨 남성”(정보라ㆍ여ㆍ5년차ㆍ5단), “부엌칼로 자기 배를 세 번이나 그은 배추장사”(문승규ㆍ8년차ㆍ11단), “잘 나가는 주먹이라고 고래고래 욕하고 소란 피우다 안전요원 인상에 지레 겁먹는 양아치”(한명환ㆍ5년차ㆍ11단), “출입정지 조치를 하자 성형수술에 가발까지 쓰고 나타난 아줌마”(김도환ㆍ5년차ㆍ10단) “1억원을 잃고 모두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시너를 들이붓는 할아버지” 등.
이처럼 수많은 사연과 해괴망측한 돌발상황을 평정하는데 무술실력은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주먹이 주먹을 부른다’고 오히려 더 큰 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안전요원의 진짜 실전 무기는 ‘대화’다. 강철 주먹이 아니라 ‘인내와 설득’인 셈이다.
그들도 평범한 직장인이라 거칠고 딱딱한 첫인상과 달리 인터뷰를 할수록 친근해지고 편안해진다. 말 사이사이 어색한 웃음도 자주 내비쳤다.
안전요원 정훈희(5년차ㆍ11단)씨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건 무언의 힘이고 말과 마음을 통해 상대를 얼마나 인간적으로, 가족처럼 대해 주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도환씨도 “경호 대 고객서비스를 5 대 5 비율로 한다는 신조로 허심탄회하게 대하면 말썽을 일으키던 상대도 이해하고 풀어진다”고 했다. 특히 ‘출입제한’(2004년) 조치를 취한 이후론 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정말 절세의 무공을 뽐낼 일은 없을까. 연말이면 전국의 내로라하는 조직폭력배의 수장과 행동대장, 조직원이 모이는 곳이 바로 강원랜드 카지노이기 때문에 긴장감이 돌 수밖에 없다.
문승규 반장은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라고 했다. “그들은 풍기는 카리스마부터 달라 우리도 움찔하죠. 잔뜩 긴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돈을 잃으면 분에 못 이겨 사소한 자해를 할지언정 절대 우리를 자극하진 않아요. 우리도 그들을 끝까지 고객으로 대합니다.”
정말 화가 날 때는 다른 안전요원에게 인계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대처한다. 그러나 안전요원이 참을 수 없는 건 화가 아니라 눈물이라고 했다. 도박으로 망가진 이들이 전하는 애절한 사연 앞에 가슴이 녹아 든다.
김도환씨는 “도박을 말리는 부인을 때리는 남편을 겨우 말렸더니 집에 쌀이 없다며 한탄하더라.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문 반장은 “재산 탕진한 팔순의 어르신이 부인 생일에 가지도 못한다고 울길래 50만원을 쥐어줬더니 다음날 다시 카지노에 왔더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라고 했다.
보통 사람은 감당 못할 화를 누르고, 감정을 숨기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쌓인다.
오죽하면 “일대 술독은 모두 안전요원이 동 낸다”는 소문이 돌 정도. 일에 몸에 배기 전(입사 3년 이하)에는 술로 일의 고단함을 풀고, 밉상인 고객을 뇌리로 불러내 ‘상상 격투’를 하곤 한단다. 산간오지에 발이 묶인 가족을 바라보는 맘도 아프기만 하다.
하지만 자부심만큼은 오롯하다. 한명환씨는 “안전요원은 고객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거울이자, 수렁에서 붙들 수 있는 마지막 손”이란 표현을 썼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 극단에 선 이들에게 살가운 말을 건네고 평범한 일상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리라.
틈틈이 취미생활(스키 등산 등)을 즐기고, 시골 초등학교를 돌며 운동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도 쉬지않는 안전요원들. 이들은 ‘무섭다’는 주변의 선입견이 가장 싫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혹 카지노에 들릴 일이 있거든 피하지 말고 살짝 미소 짓자. 그들 속의 웃음도 깨어난다.
정선=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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