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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사카테 요지 '블라인드 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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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사카테 요지 '블라인드 터치'

입력
2008.02.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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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극은 한 사회의 죄의식을 대면하게 하고 망각과 무관심을 일깨우며 응어리를 만져준다. 산울림극장에서 공연 중인 윤소정 이남희의 2인극 <블라인드 터치> 는 국가 차원의 폭력에 희생되고 대의와 명분의 거대담론 아래 영혼의 살갗이 다 쓸린 개인의 상처를 조망한다.

그리고 미시적인 일상과 사람살이의 관계 속에서 치유를 모색해 가는 과정을 은근하고도 결기 있게 그려낸다. 사회파 작가이자 현대일본연극의 40대 기수로 알려져 있는 사카테 요지의 2002년 작품이다.

사카테 요지는 전체주의의 일상적 기원과 일본인의 정치적 무감각을 밀도 높게 축소한 무대 공간 속에서 수동적이고 무기력해진 ‘몸’을 통해 표현해 온 작가이자 연출가이다. (<천황과의 입맞춤> <다락방> 등이 번역 소개된 바 있다.) 전쟁 등 국가와 집단의 폭력에 대한 일본인의 방임과 무관심은 그의 창작의 역설적인 동인이다.

2004년 발표작 <오뚜기가 넘어졌다> 에서는 우경화 되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평화헌법의 확대해석과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문제를 비판한 바 있다.

<블라인드 터치> 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 도중 경찰을 숨지게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8년 동안 옥살이를 한 남자와 청춘을 인권운동에 바친 연상의 여자 사이에서 일상과 사랑의 감정이 자리 잡는 과정을 따라간다. 16년 전 옥중결혼으로 맺어진 두 사람은 남자가 출옥하면서 함께 살게 되고, 연극은 초봄부터 가을까지 그들이 더듬더듬 찾아가는 때늦은 사랑의 화음을 보여준다.

무대는 다다미 바닥 등 일본 가옥의 실내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는데 좌식 구조이기에 가능한 객석과의 시선의 대치라든가, 변혁운동의 후일담을 넘어 전망과 실천을 제기하는 연극의 주제의식을 긴장감 있게 객석으로 전달하는 것을 돕는다.

그러나 미닫이문, 벽장, 덧마루, 마당에 놓인 작은 화분 등 공간의 물리적 요소들을 심리적 동선으로 적극 활용하지 않아 극 흐름은 다소 단조롭게 느껴진다.

배우가 가진 생래적 화사함 때문인지 젊은 날 인권운동가로 강단 있게 살아온 여자가 남자를 자기 삶에 들여놓으면서 점차 여성적인 것이 가미되어가는 변화 과정을 생략한 것도 아쉽다.

두 사람이 되는대로 피아노를 두드리는 ‘블라인드 터치’의 불협화음이 차츰 조화를 찾고 서로의 소음에 화답해 가는 결말처럼 사랑과 혁명, 일상과 이념, 말랑한 것과 강고한 것의 공존이 우리 삶의 전체성이라는 것을 나지막이 말해주는 연극이다. 김광보 연출, 3월 16일까지 산울림극장.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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