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파워를 등에 업은 국부(國富)펀드 설립이 선진국과 인도 등 거대 신흥국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그 동안 주로 산유국들이 국부펀드를 운용해왔지만, 세계 금융계에서 목소리를 강화하고 해외 인수합병(M&A)에 주요 주체로 부각되면서 각 국마다 전략적으로 '국부펀드 키우기'에 나서는 양상이다.
18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와 인도가 국부펀드 설립의지를 공식화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은 "국가 연기금을 운영하는 프랑스 공공 금융기관(CDC) 산하에 국부펀드를 설립하는 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 정부도 50억달러 규모 국부펀드를 설립해, 석탄 정유 천연가스 등과 관련된 외국기업 인수에 나설 예정이라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앞서 지난 1일에는 러시아가 320억 달러 규모의 국부펀드 운용을 시작했고, 일본도 지난주 국부펀드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국부펀드의 활동은 기록적이다. 기업정보 제공업체인 톰슨 파이낸셜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부펀드의 전 세계 투자 규모는 206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국부펀드 투자규모의 3분의 1에 달한다.
특히 1월 전체 투자금 중 93.3%가 금융회사에 투입됐을 정도로, 월가 주요 금융회사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었다. 여기엔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넣은 한국투자공사(KIC)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 속에서, 국부펀드가 세계 금융자본주의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국부펀드의 매력은 정부의 힘을 기업에까지 확장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국부펀드가 특정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면, 그 기업의 경영과 사업에 해당 국가의 전략을 반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면 이론상 국가 소유의 기업이 된다. 인도가 자원개발관련 해외 업체의 인수를 목표로 국부펀드를 운용키로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거부감도 크다. 현재 국부펀드들의 주요 투자대상, 즉 사냥감이 된 미국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중동국가의 국부펀드 등이 미 금융회사에 침투하고 있는데 대해 정치적 우려를 나타내 왔고, 미 정부도 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최근 미 상원 금융위원회의 국부펀드 청문회에 출석해 "국부펀드가 추구하는 상업적ㆍ경제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국부펀드 관계자들을 만나 투명성 제고에 노력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엑슨폴리오 법을 도입해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기간산업에 대해서는 외국인 지배에 대해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기간산업이 아닌 주요 금융회사들이 다른 국가의 국부펀드에 투자 받는 것에 대해서는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굴욕적으로 바라보는 상황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충격 때문에 당장은 가릴 형편이 못되지만, 이대로 가면 월스트리트가 중국자본, 러시아자본의 지배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미국이 금융불안으로 국부펀드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데, 각국의 어느 기업이라도 이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국부펀드 규모와 영향력이 커질수록 이에 대한 논란도 함께 커져 갈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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