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불타고 나서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국보 제274호가 떠올랐다. 1992년 8월 경남 통영군 한산면 문어포 서남쪽 해저에서 해군 이충무공 해저유물발굴조사단이 귀함별황자총통(龜艦別黃字銃筒)이라는 무기를 발굴, 인양했다. 조사단은 1596년에 만든 것으로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던 거북선에서 사용한 대포라고 설명했다.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문화재위원회는 발굴 한 달 만인 9월 4일 국보 제274호로 지정했다. 전광석화같은 속도였다. 그러나 4년 뒤 모조품으로 밝혀졌고, 96년 8월 국보 지정이 해제됐다. 그래서 국보 274호는 영구 결번이다.
■ 20세기와 같은 문화재 속도전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11일 새벽 숭례문 누각이 불타 무너진 바로 그날 아침 문화재청은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기간은 3년, 비용은 200억 원쯤 든다고 했다.
하루도 안 돼 견적이 뽑혔다는 얘기다. 숭례문에 걸맞은 오래된 소나무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구한다 해도 잘라서 말리는 기간만 해도 1년 이상 걸린다는데, 어떻게 3년에 지을 수 있을까. 더구나 국보의 복원이라면 조사하고 따지고 준비해야 할 것이 부지기수일 텐데…. 다음날. 문화재위원장이 “만장일치로 숭례문의 국보 1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 복원이 되든 말든, 어떤 식으로 복원이 되든 국보 1호 지위에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결정이 아니라 선언이다. 말이 복원이지 재현이 될지, 심하게 말해서 신축이 될지 알 수 없다.
복원한 숭례문에 600년의 시간과 기억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알아야 국보로 남기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같은 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화문 복원 사업용으로 확보한 소나무를 활용해 이른 시일 내에 복원하겠다”고 했다. 다급한 심정은 모르지 않겠는데 엉뚱한 소리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서울시장 시절 관리 책임은 일언반구도 없이 국민 성금 얘기를 꺼냈다.
■ 광화문 복원은 장기계획에 따라 경복궁 복원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중요한 사업이다. 듣는 광화문은 얼마나 섭섭하겠는가. 사흘째 되는 날. 문화재청이 타고 남은 부재들을 쓰레기장에 내버리다가 시민의 항의를 받고 중단했다.
시간을 갖고 알뜰살뜰 살펴서 복원에 활용할 수 있는 것과 교육용으로 남길 만한 것을 가려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슬쩍 보고 덜렁덜렁 내버린 것이다. 이 모든 책임 있는 기관과 인사들의 호들갑과 빨리빨리 정신은 문화나 문화재와는 상극이다. 그들이 결국 복원을 맡을 테니 걱정이 태산이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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