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중국에게 지켜온 15승11무의 절대 우위. 17일 중국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에서 30년의 자랑스런 역사는 일대 위기를 맞았다. 적지에서 열린 대회인 데다 중국 축구는 한층 날카롭게 성장해 있었다. 후반전에 거푸 2골을 빼앗기며 30년 만의 뼈아픈 패배가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30년을 지켜온 한국 축구의 자존심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돌아온 골잡이’ 박주영(23ㆍ서울)과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27ㆍ전남)가 릴레이골을 터트린 한국 대표팀은 중국에 3-2 역전승을 거뒀다. 축구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펠레 스코어’가 나온 짜릿한 승부였고, 중국에게 한국 축구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존재라는 ‘공한증(恐韓症)’을 또 안겨준 기분 좋은 승리였다.
공한증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주인공은 돌아온 축구천재 박주영이었다. 중국의 공세에 밀리고 있던 전반 42분. 박주영은 비호같이 뛰어올라 염기훈이 띄운 크로스를 정확히 머리에 갖다 대며 선제골을 뽑아냈다. 지난 2006년 3월 앙골라와의 평가전 이후 무려 2년 만의 A매치 골. 청소년대표팀 시절 중국을 두 번 만나 4골을 몰아친 박주영은 ‘중국 킬러’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선제골을 넣은 박주영은 골감각을 되찾은 듯했다. 중국에 연속골을 허용해 1-2로 뒤지던 후반 20분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감아 찬 프리킥이 정확히 중국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30년 만의 ‘충칭대첩’을 기대한 중국 축구팬들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골이었다.
대역전극의 마무리는 허정무호의 황태자로 급부상한 수비수 곽태휘의 몫이었다. 2-2 무승부로 끝나는가 싶던 후반 인저리타임. 고기구의 헤딩 패스를 받아 가슴으로 트래핑 뒤 그림 같은 발리슛으로 중국 골네트를 가르며 극적인 3-2 역전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북한 4개국이 참가한 동아시아선수권에서 허정무호는 기분 좋은 첫 승을 거두며 대회 우승에 한 걸음 다가섰다. 대표팀은 이날 3골을 보태며 지난 6일 투르크메니스탄전(4골)에 이어 풍성한 골잔치를 이어갔다. 한국은 20일 오후 9시45분 북한과 대회 두 번째 경기를 갖는다.
김기범 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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