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품을 버린 너는 누구를 생각하며 살수 있겠는가. 어머님의 품을 잃은 후손들은 누구를 의지하며 살겠는가. 역사의 한 발자취가 지워져 버렸다. 우리는 다른 역사를 써야 하는가. 누구를 위하여, 누구를 위해서. 그 답은 자신이다.’
화마(火魔)에 무참히 짓밟힌 숭례문을 향해 시민 양석종씨가 가슴 저린 애환을 토해 내며 눈물로 써내려간 글귀다. 양 씨처럼 ‘국보 1호’를 잃은 고통과 분노와 애도의 글이 15일 숭례문 잔디광장 양쪽 화이트보드(2개)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600년 동안 끄떡없었던 숭례문을 우리 손으로 태워버렸다는 충격과 슬픔, 미안함이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고개를 한없이 숙이게 했다.
“공기처럼 늘 있을 때는 몰랐는데 너무 슬프다”는 한 시민의 글에 다른 시민은 “한 사람의 만행으로 5,000만 국민이 불행과 절망에 빠졌다”고 애도했다. 자신을 ‘J’라고 밝힌 시민은 “누가 그 추억을 불 속으로 밀어 넣었는지 알면서도 원망스럽다”고 했고, “미안합니다 후손님”이라고 적힌 대목에선 꾹꾹 참았던 감정이 울컥 배어나온 듯 했다.
외국인 ‘나타샤’는 서툰 한글로 “가슴이 아팠어요”라고 적었고, 한국에 자주 왔었다는 한 일본인 부부 관광객은 일본어로 “일본에 돌아가더라도 남대문이 하루 빨리 아름다운 옛 모습을 복원하길 기원하겠다”고 적었다.
숭례문과의 가슴 찡한 추억도 애절하기만 하다. “2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저녁과 주말을 보냈던 곳, 남대문이 불 타오르던 날을 결코 잊을 수 없어요”, “숭례문을 처음 봤는데 불 탄 모습이라니… 나처럼 아직 한번도 못 본 사람이 많을 텐데….”
숭례문의 울분을 대변이라도 하듯 문화재청과 소방당국 등 관련 기관을 꾸짖는 글도 눈에 들어왔다. 한 시민은 “정부는 뭘 했는가. 이명박 당선인은 반성하고 사죄하라”고 비난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 봐야 뭐한데유”라는 경주 이씨 국당파 후손의 글귀 옆에는 ‘전직 소방관’이 “소방서의 화재 초기 진압에 문제 있음”이라고 지적한 글이 선명했다. 서울 중구청, 소방방재청, 문화재청 등 ‘3청’의 ‘네 탓 공방’에 대한 일침이었다.
시민들은 조금씩 아픔을 이겨내고 숭례문의 옛 자태의 복원을 통해 민족의 얼과 혼을 되살려야 한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다 겪었던 숭례문아! 재건돼 천만년 가거라”, “무형적인 정신과 부활의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찬연히 나타나길 기원합니다” 국민들의 이런 간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숭례문은 가림막에 포위돼 추위와 외로움에 한없이 떨고 있는 듯 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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