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비민주주의와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상, 표현, 언론, 결사의 자유이다. 그러나 긴 역사의 시각에서 눈높이를 낮추어 그런대로 민주주의로 봐줄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한 표를 갖는 보통선거권이다. 인구의 10%에 불과한 유산자들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졌던 사회를 어떻게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보통선거권이 도입된 것은 선진국도 채 백년이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선진국의 경우도 민주주의의 역사는 채 백년도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아니 이는 노동자 등 무산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여성의 경우는 고작 60년 안팎이다.
■ 염치없는 비례대표 감축 기도
흔히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의해 발달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철저하게 민주주의의 기본인 보통선거권에 반대했다. 보통선거권을 도입할 경우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무산자들의 투표에 의해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 중 가장 진보적이었던 존 스튜어트 밀조차 이 같은 우려 때문에 노동자 등 무산자들에게도 투표권을 주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보다 지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에 1인당 네 표를 주는 차등선거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자와 여성 등 투표권을 갖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 덕분에 이제 보통선거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류 모두의 기본권이 됐다. 그러나 모든 국민은 동등한 한 표를 갖고 그 한 표는 똑같이 취급 받는다는 보통선거권과 표의 등가성은 말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정치자금, 영향력 등 선거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권력자원이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못지 않게 보통선거권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은 선거제도이다. 다수를 얻는 후보가 승자가 되는 한국식의 선거제도는 소수자의 표를 사표(死票)로 만들어 표의 등가성을 깨트리게 된다. 예를 들어, 오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모든 선거구에게 51%를 얻고 대통합민주신당이 49%를 얻는다면 한나라당이 100% 의석을 차지해 국민의 49%의 의사는 완전히 사장되고 만다.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이다. 그 중에서도 비례대표 배분방식을 통해 의석수가 득표율과 일치하도록 만든 독일식이 가장 이상적인 제도이다.
우리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2004년 총선부터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사표가 생기지 않도록 한 독일식이 아니라 일본식을 도입하고 비례대표 의석을 적게 설정해 아직도 표의 등가성이 상당히 왜곡되고 있다. 한 예로, 민주노동당은 04년 총선에서 10% 득표를 했지만 전체 의석의 10%에 해당하는 30석이 아니라 3%에 불과한 10석만을 차지했다. 3분의 2 이상의 표가 사표가 됐다.
이처럼 우리의 선거제도가 아직도 표의 등가성과는 거리가 멀기만 함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어렵게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의 틀을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최근 선거구 조정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일부 중진의원들의 선거구를 합병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한나라당이 이들의 선거구를 살리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는 대신 지역구를 늘리자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바꿔야
구체적으로 이들을 살리기 위해 국회의원 의석수를 늘리는 방안을 시사했다가 비판적 여론이 일자 의석수는 그대로 두되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일부 중진들의 밥그릇을 지켜 주려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퇴행적 행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반대로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이다. 아니 독일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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