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중반에 접어든 김수현 작가가 가족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로 돌아왔다. 불륜, 가족 간의 재산 다툼 등 자극적인 조미료를 쏙 뺀 <부모님 전상서> 를 내놓은 지 가족드라마로는 3년여만이다. 부모님> 엄마가>
<사랑과 야망> 을 리메이크하고, 불륜만으로 한 드라마를 가득 채운 <내 남자의 여자> 를 내놓았던 그 3년 동안 시청자들은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류의 김수현식 가족드라마에 목이 마르기도 했을 게다. 목욕탕집> 사랑이> 내> 사랑과>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KBS 2TV <엄마가 뿔났다> 는 첫 방송부터 25% 안팎의 시청률을 보이며 순항 중이다. 방송가에서는 시청률 40% 선을 넘어 국민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김수현 드라마의 힘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것일까. 엄마가>
뭐니뭐니해도 두괄식 직설화법을 첫번째로 꼽을 수 있다. 작가 스스로도 “나는 타고나기를 간접화법과는 의논이 안 되는 성격”이라고 할 정도다.
배배 꼬아 에둘러 표현하지 못하는 그의 말투는 드라마 속 인물에 그대로 투영된다. 그래서 김수현 드라마는 머리를 굴려가며 볼 필요가 없다.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는 조미료를 넣지 않은 백 퍼센트 어머니 표 된장찌개처럼 질리지 않는 구수한 맛이어서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엄마가 뿔났다> 에서도 김수현식 대사는 역시 쫀쫀한 맛깔을 낸다. 밥벌이도 못하는 대학원생과 결혼하겠다는 막내딸을 생각하던 김한자(김혜자)가 “답답하기가 콧구멍 없는 사람 같다”고 내뱉는 독백,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는 딸 나이석(강부자)을 보며 팔순을 넘긴 아버지 나충복(이순재)이 ‘너 잘났다’는 투로 던지는 “오냐, 네 궁둥이 맷방석이다”는 대사는 백미다. 김한자가 자꾸 깜박깜박 잊어먹는다는 소리를 하자 남편 나일석(백일섭)이 충청도 억양으로 느물느물 “빤쓰는 입었어”라고 던지는 대사는 행복이 그득한 웃음바다로 시청자들을 내몬다. 엄마가>
대중문화평론가 정석희씨는 “현실에서는 말이 어눌한 사람도 있는데 김수현 드라마에서는 모든 인물이 대사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달변이어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캐릭터들의 시원스러운 대사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줘 드라마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고 분석했다.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힘은 등장인물들의 생명력이다. 김수현 드라마에서는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다. 부모와 자식, 심지어 손자까지 자신의 입장을 잘 드러내며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1975년 70%대 시청률을 기록했던 <신부일기> 에서부터 84년 시청률 76%의 <사랑과 진실> , 방송시간이면 수돗물 사용량이 줄어들었다는 91년 <사랑이 뭐길래> 를 거쳐 <엄마가 뿔났다> 에 이르도록 변치 않는 김수현 드라마의 특징이다. 엄마가> 사랑이> 사랑과> 신부일기>
오죽하면 동료 작가들조차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모든 인물이 개성을 잃지 않고 존재감을 휘날릴 수 있는 것은 오롯이 작가의 힘”이라고 입을 모을까.
김수현 드라마의 힘은 소재에 대한 강력한 집중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릴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만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더니 불륜 이야기를 다룰 때는 꼭 필요한 몇 명의 인물만 갖고 철저하게 불륜에 몰입한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가족 드라마에서는 밥상머리 이야기같이 별다를 것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소재를 갖고 편안하게 풀어가다가 불륜처럼 자극적인 소재를 다룰 때는 인물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화학반응까지 세세하게 그려내는 투가 항상 참신하게 다가온다”고 평가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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