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중장비를 동원, 불타버린 숭례문의 일부 잔해를 수거해 폐기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에 타 심하게 훼손된 폐부재라고는 하지만 일부는 기와 문양이 뚜렷이 나타나는 등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안전 작업 등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 폐자재를 밖으로 반출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즉시 폐부재의 현장 반출을 중단했으나 문화재청의 어처구니 없는 행태에 대해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서울 은평구 수색동에 있는 건축폐기물 처리업체 A사 관계자는 14일 “숭례문 화재 현장으로부터 13일 2.5톤 트럭 두 대 분량의 잔해가 반입됐으며, 일부는 다시 경기 파주시 교하읍에 있는 B폐기물 처리업체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실제 A사의 폐기물 하치장에서는 이날 숭례문을 덮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기와 여러 장 발견됐다. 파주에 있는 B사는 일부 폐기물을 파쇄기를 이용해 처리하는 곳이어서, 불에 탄 숭례문 부재와 깨진 기왓장 등은 이미 파쇄됐을 것으로 보인다.
숭례문 화재 현장에서는 잔해를 무리하게 수거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날 화재 현장에는 포크레인이 투입돼 불타버린 서까래와 깨진 기왓장들을 마구 쓸어 담았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잔해 수거도 일종의 유물 발굴처럼 섬세하게 해야 한다”며 안타까워 했다.
문화재청은 “화재로 훼손된 기왓장, 목부재 등은 사고 현장에서 ‘건축ㆍ사적 합동분과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이 논의해 재사용 가능 여부, 학술적 가치 유무, 숭례문 복원시 참고가치 유무 등을 따져서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따랐고, ‘버려도 될 만한 것’들을 버렸는데 무슨 문제냐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과 시민들은 “문화재청이 정신이 제대로 된 기관이냐”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잔해들이 비록 재사용이 불가능하고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됐다 해도 교육이나 연구 목적으로 활용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폐부재는 하나도 버릴 수 없다”며 “이런 어이없는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특정 장소에 전시해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판 여론이 들끓자 문화재청은 이날 오후 해명자료를 통해 “선별 작업을 더 엄격하게 진행하고, 반출은 당분간 중지하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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