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8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 본사에서는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 김응한 미시간대 석좌교수, 제프리 존스 미국변호사, 손욱 농심 회장 등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된 '내부거래위원회'가 열렸다.
이 위원회는 포스코 이사회 내부의 계열사간 거래 심의ㆍ의결기구. 사외이사들은 이날 열띤 토론 끝에 위원회에 올라온 '포항 CTS(운송시스템)사업권 포스코터미날 양도계획' 안건을 부결시켰다.
포스코가 갖고 있던 사업권을 계열사인 포스코터미널에 넘기는 것이 합리적인지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내부거래위원회는 작년 4월 발전용 연료전지의 기술개발을 계열사인 포스코파워에 넘기는 안건도 부결시켰다가 7월에야 뒤늦게 통과시키는 등 깐깐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상장법인 이사의 4분의 1을 사외이사로 선임토록 한 상장법인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된 지 8년.
아직도 상당수 사외이사들이 안건조차 모르고 이사회에 참석하는 게 현실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6년 이사회 안건에 대해 사외이사가 단 한번이라도 반대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는 회사는 총 1,403개사 중 12개사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제 목소리를 내는 사외이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사회 때마다 '침묵'을 지키며 거마비(車馬費)나 챙겨 '거수기' 또는 '고무도장' 소리를 듣던 사외이사들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투명경영'을 요구하는 소액 주주들과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탓이다.
이런 경향은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유독 강조하는 포스코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6월 반도체업체인 에이디칩수를 인수하겠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공시 후 열린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은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강력 반대, 안건을 부결시켰다. SK텔레콤은 결국 주주들에게 허위공시를 했다는 이유로 증권선물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라는 페널티까지 받았다.
SK텔레콤이 32.7%의 지분을 갖고 있는 위성DMB 사업자 TU미디어의 유상증자 참여건도 사외이사들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TU미디어는 큰 폭의 적자 탓에 증자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으면 파산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사외이사들은 TU미디어의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증자 결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깐깐한 사외이사들은 연간 6~10회 가량 열리는 이사회 회의에도 거의 빠지지 않는다. 1년에 한두 번 회의에 참석해 '눈도장'을 찍은 뒤, 거수기 역할을 하던 시절은 먼 옛날 얘기이다. 지난해 총 7차례 열린 포스코 이사회(사내 6명, 사외 9명)에는 9명의 사외이사 중 4명만 한 번 불참하고, 나머지 5명은 출석률 100%를 기록했다.
이 같은 사외이사들의 적극적인 경영 참여는 최근 윤리경영 바람이 불면서 대기업들이 사외이사의 비중을 크게 늘리고 중량감 있는 인사들을 대거 영입한데 영향을 받았다.
예컨대 SK텔레콤의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수는 2004년 각각 4명, 4명에서 2005년엔 4명, 7명으로 늘었다. 또 지난해에는 각각 4명과 8명으로 사외이사가 사내이사의 두 배나 된다.
A그룹 감사실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임명된 사외이사들은 다양한 경력과 전문지식을 토대로 이사회 안건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며 "회사 입장에선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었지만, 기업경영의 견제와 균형 측면에서 큰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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