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한국어 루브르 감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한국어 루브르 감상

입력
2008.02.14 14:52
0 0

짧게라도 해외를 여행하다 귀국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한국에 왔음을 실감한다. 기내가 법적으로 한국 영역이어서가 아닐 터. 승무원의 말을 한국어로 듣는 게 첫째 이유이고, 주변 대화가 자연스럽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그 다음이다.

외국에서도 왜 갈비탕을 맛있게 먹지 않았겠느냐마는 'Boiled rib & soup'이나 'Galbi tang'의 메뉴로는 아무래도 혀와 배가 흡족할 수 없다. 한국식당에 가서도 'Ice noodle'이나 'Bulgogi' 따위를 읽다 보면 머리 속에서 조금씩 쥐가 나고 냉면과 불고기의 맛이 달아나기 시작한다.

■차이는 리슨(Listen)과 히어(Hear), 워치(Watch)와 씨(See)다. 듣고 보는 수단에 소비하는 두뇌활동을 대상을 공감하는 데 돌리면 훨씬 많은 내용을 습득할 수 있다. 1989년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구경한 적이 있다.

경비행기는 멀리 딴 곳으로 우회하고 있었다. 경관을 보여주려고 그러는 줄 알았더니, 짝짓기하는 계곡의 독수리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기내방송이 나왔다. 영어로 들었다면 해석하는 데 신경을 쏟아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내용을 기억할 리 없다. 당시 영어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로도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라 조콩드 혹은 모나리자로 알려진 이 작품은 1503년부터 1506년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습니다. 수수께끼 미소의 여성은 과연 누구일까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12일부터 <모나리자> 등 600여 점에 대해 한국어 안내서비스를 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이 박물관에서 통용돼온 6개 국어(불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일어)에 더해 한국어가 7번째로 자리잡았다. 프랑스가 한불 문화교류 일환으로 우리에게 제의한 것을 대한항공이 수용했고, 걸작품의 표지판엔 'Thanks to Korean Air'라는 문구도 함께 전시됐다.

■어려운 예술품, 특히 서양 걸작품이 우리말로 해설될 때 이해와 공감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상상 이상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 전이 국민적 관심을 끄는 주된 이유는 우리의 말과 글로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그 역작들을 편하게 우리의 정서영역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히어'하고 편하게 '씨'하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다. 우리 말로 <모나리자> 의 배경을 4분 21초 동안, <밀로의 비너스> 제작과정을 6분46초 동안 듣다 보면 루브르 박물관의 걸작들은 우리의 마음 속에 편하게 들어와 있게 된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