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 제출 5개월 만에 상임위(통일외교통상위)에 상정됐지만, 조기 비준의 당위성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미국이 여러 이유로 비준 동의 절차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라도 먼저 해야 한다'는 의견과 '우리가 왜 먼저 나서야 하느냐'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다수 의견인 조기비준주장의 근거로는 국회 정치 일정 등 시간의 촉박함이 꼽힌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비준 동의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4월 총선을 지나 18대 국회에서나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상황. 이 경우 새 국회가 구성되는 만큼 정부는 다시 비준 동의안을 제출해야 하고, 내용을 모르는 새 의원들을 상대로 또다시 설득작업을 펼쳐야 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4월 총선이 끝나고 18대 국회가 꾸려지기 전 이른바 '레임덕 세션'에서 처리하자"는 절충안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껏 레임덕 세션이 열린 전례가 없고, 열린다 해도 비준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먼저 비준 동의를 하면 대미 압박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에 비준 동의이행을 촉구하는 한편, 한미 FTA 타결내용을 둘러싼 미국의 추가적 협상요구 여지를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협정을 체결한 것은 비준ㆍ발효를 위한 것"이라며 "양국 사정이 달라 동시비준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형편 닿는 쪽이 먼저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FTA 발효가 1년 지연될 경우 지출하게 될 기회비용이 수출입 및 외국인투자 등을 1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조기비준 반대의견은 상대적으로 소수다. '나홀로 비준'으로 미국을 압박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국익에 전혀 도움될 게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민변 FTA 대책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는 "현재 미국 의회는 쇠고기나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추가양보가 있어야 비준을 동의해줄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 의회가 먼저 움직인다고 미국이 영향을 받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또 미국산 쇠고기 검역 문제 등과 관련해 향후 미국이 비준동의의 전제로 무리한 추가 요구를 해올 경우 우리가 "비준을 안 할 수 있다"는 카드를 써야 하는데, 비준을 끝낼 경우 스스로 족쇄를 채우게 된다는 평가도 있다.
한미 FTA 협상 과정과 마찬가지로 국회의 무기력한 모습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송 변호사는 "무엇보다 국회의 비준 동의가 형식적 절차로 전락해버린 상황이 안타깝다"며 "비준 동의 절차는 얼마나 빨리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협상이 얼마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체결됐는지를 점검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대표적 한반도전문가인 존스홉킨스대학 부설 한미연구소의 돈 오버도퍼 소장은 이날 대한상의에서 열린 한반도미래포럼 국제학술회의에서 한ㆍ미 FTA에 대한 미국의회의 싸늘한 분위기를 전했다.
오퍼도퍼 소장은 "미국의회와 정치지도자들은 한ㆍ미 FTA가 미국에 별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힐러리 오바마 상원의원 모두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 비준에 실패한다면 한국이 미국의 진정한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비준이 안되면 한ㆍ미 관계에 심각한 영향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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