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한두 달 안 받아도 좋고, 깎여도 상관 없다. 다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그런데 결국 그 꿈은 물거품이 됐다. 10년 이상 함께 한 ‘형님’들과 더는 같은 유니폼을 입을 수 없으니 말이다.
지난 96년 470억원에 태평양을 인수, 창단한 현대 유니콘스. 현대는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90년대 이후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한국시리즈 우승만도 네 차례나 된다. 하지만 2003년 정몽구 구단주 사망 이후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고, 범 현대가(家)의 지원이 끊긴 지난 시즌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돈(131억원)을 빌려 살림을 꾸려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에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자 현대는 크게 흔들렸다. 일부 코치들은 다른 구단의 러브콜 앞에 망설였고, 선수들도 차라리 이럴 바에야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 되는 편이 낫겠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흔들림은 잠시뿐이었다. 현대는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기로 했다. 선수들은 KBO에 “코칭스태프, 선수들, 프런트가 모두 함께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KBO도 “새 구단이 여러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조금만 인내하자”며 전원 고용승계를 약속했다.
다른 구단들이 하와이, 괌, 사이판으로 전지훈련을 떠날 때도 현대는 을씨년스러운 원당구장을 지켜야 했다. 그래도 고참들은 “우리 모두 함께 갈 수만 있다면 이런 것은 일도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다 같이 살 것”이라며 후배들을 독려했다.
비온 뒤에 땅은 더욱 굳어졌다. 선수들은 지난 4일 김시진 감독의 경질소식과 센테니얼의 구조조정 방침이 전해진 뒤로 하나가 됐다. 센테니얼, KBO와 면담을 가졌던 김동수 전준호 정민태 이숭용은 “고액 선수들이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용승계를 보장 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선수들은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아프다. 친형처럼 지냈던 코치들 6명과 더는 같은 유니폼을 입을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하니 목부터 멘다. 한 고참선수는 선수단 전원 고용승계가 확정된 12일 오후 원당구장을 나가면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코치님, 너무 죄송합니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어요. 용서해주세요.”
고양=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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