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의 경제팀 면면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법칙'이 발견된다.
첫째, 정권 초 반드시 학자를 중용한다.
둘째, 학자 출신과 기존 경제 관료들은 반드시 싸운다.
셋째, 이 싸움에서 학자들은 지고 반드시 관료들이 이긴다.
제1법칙: 학자중용의 법칙
집권 초 웅대한 새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는 강렬하다. 채색은 관료들에게 맡기더라도, 밑그림은 이론으로 무장한 학자들이 낫다고 판단한다. 초창기 YS정부엔 박재윤씨가 있었었고, DJ정부 출범때에는 김태동씨를 비롯해, 김성훈 윤원배 이진순 이선씨 등이 요직에 대거 포진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이정우(정책실장)씨가 가장 상징적이다.
제2법칙: 학자-관료 투쟁의 법칙
학자와 관료의 역할은 통상 두뇌와 손발, 장기와 단기의 관계로 설정된다. 학자 출신들이 국정이념과 장기과제를 만들면, 관료들은 정책으로 실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두뇌와 손발, 장ㆍ단기의 경계는 그리 명확하지가 않다.
영역ㆍ주도권다툼은 불가피하다. 학자들은 관료를 '개혁저항세력'으로 몰아붙이고, 관료들은 학자를 '현실 모르는 아마추어'로 치부한다.
이 싸움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된다. YS시절 박재윤 경제수석과 이경식 경제부총리는 정권 첫 작품인 '신경제 100일 계획' 수립때부터 마찰을 빚었다. DJ정부초엔 김태동 경제수석과 강봉균 정책기획수석간 갈등 때문에, 임명 3개월만에 자리를 맞바꾸는 일까지 벌어졌다.
제3법칙: 관료필승의 법칙
싸움에서 학자가 이긴 예는 한번도 없다. 언제나 학자필패-관료필승이었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학자들은 논쟁이라면 몰라도 이런 식의 파워게임에는 익숙치 않다. 반면 산전수전 다 겪은 관료들은 물러설 때와 나설 때, 그리고 나서서 이기는 방법을 안다.
둘째, 학자 출신들은 혈혈단신인데 비해 관료들은 수많은 공무원들의 조직적 지원을 받는다. 자료와 정보를 독점한 관료들은 맘만 먹으면 학자 출신을 쉽게 '왕따'시킬 수 있다.
셋째, 인사권자(대통령)의 '총애창출능력'에서 학자들은 관료를 당해내지 못한다. 관료들은 훈련 받은 '정책기술자'들이다.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밥상을 차려 입안에 쏙 넣어줘야 하는지 잘 안다. 싸움의 최종판정은 대통령의 몫인데, 결국은 정보 많고 상황정리 잘하고 어떻게든 대책을 찾아내는 관료쪽에 마음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일게다.
이명박 정부 초대 청와대 수석진용이 갖춰짐에 따라 이번에도 제1법칙(학자중용의 법칙)은 입증됐다. 이제 관심은 제2법칙 여부인데, 이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학자출신인 곽승준(국정기획수석)와 관료출신 강만수(기획재정부장관 유력)씨가 친하든 안 친하든, 역할구조에서 학자와 관료사이엔 분쟁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옳지 않다. 각자의 고유역할이 있고, 견제와 균형도 필요하다.
키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 현안에 매몰되다 보면, 단기성과를 재촉하다 보면 학자출신들은 설 땅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퇴장과 함께 큰 그림, 장기과제도 사라진다. 학자출신은 정책기술자가 아니다. 대통령이 그것만 인정해 주면 된다.
이성철 경제산업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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