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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방화' 재구성/ 작년 두 차례 답사… 누각 2층 바닥 시너 뿌린 뒤 불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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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방화' 재구성/ 작년 두 차례 답사… 누각 2층 바닥 시너 뿌린 뒤 불질러

입력
2008.02.1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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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모(70)씨가 '국보 1호'숭례문을 새까만 잿더미로 만드는 데 사용한 것은 고작 1.5ℓ짜리 페트병에 든 시너와 일회용 라이터 1개였다. 12일 경찰이 발표한 채씨 조사내용을 중심으로 채씨의 범행 모의부터 실행까지를 재구성해 봤다.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같은 해 7월 석방된 채씨는 또다시 새 방화 대상을 물색했다. 종묘 등 문화재와 열차 등 대중교통 수단을 둘러봤지만 마땅치 않았다. 종묘는 낮에는 사람이 많고 밤에는 경비가 삼엄해 출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해 포기했다. 대중교통 수단 역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우려됐다. 이때 채씨의 눈에 숭례문이 들어왔다. 일반에 공개돼 있어 접근이 쉬웠고, 오후 8시 이후에는 아무도 경비를 서지 않는 데다 인명피해 역시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숭례문 방화를 결심한 그는 지난해 7월과 12월, 두 차례 사전 답사까지 하면서 본격 준비에 나섰다.

그리고 10일, 채씨는 사다리와 시너 등 범행도구를 치밀하게 준비한 뒤 범행을 결행했다. 이혼한 전처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 있던 채씨는 당일 오후 3시께 아들이 사는 일산으로 출발했고, 일산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오후 8시30분께 서울시청과 숭례문 중간 지점 정류장에서 내려 숭례문을 향해 걸어갔다.

채씨가 숭례문 앞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오후 8시40분께. 채씨는 인도와 가까운 숭례문 동쪽(오른쪽)이 아닌 반대 방향에 있는 서쪽을 진입로로 택했다. 동쪽은 남대문시장과 접해 있어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숭례문을 반바퀴가량 빙 둘러 서쪽으로 이동했고, 비탈을 기어 올라간 뒤 준비해 간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를 이용, 성벽을 넘어 오후 8시45분께 2층 누각으로 몰래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발화 지점에 다다르자 채씨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시너를 담아간 1.5ℓ짜리 페트병 3개 중 2개를 바닥에 내려 놓은 뒤 한 병의 뚜껑을 열어 바닥에 뿌린 다음 바로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발화 시각은 오후 8시48분께로 추정된다. 채씨는 범행에 사용한 라이터와 사다리, 배낭 등을 현장에 그대로 남겨둔 채 처음 잠입했던 통로를 따라 유유히 숭례문을 걸어 나왔다. 그는 택시를 타고 인근에 있는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으로 이동했고, 이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일산 아들 집으로 가 잠을 잔 뒤 다음날인 11일 전처가 살고 있는 강화도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채씨의 도피는 오래가지 못했다. 경찰은 동종 전과가 있는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수사망을 좁혀갔고, 결국 채씨는 11일 오후 7시40분께 강화도 하점면 마을회관 앞에서 서울경찰청 수사팀에 발견돼 긴급체포됐다. 경찰 관계자는 "강화도에서 발견됐을 때 채씨는 숨거나 도망가려 하기보다는 누군가 자신을 잡으러 올 것이라고 예상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국보 1호'뿐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뜨린 채씨의 '묻지마 방화'는 이렇게 범행 하루 만에 꼬리가 밟혔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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